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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절개면 앞에 선 나쁜 소년의 법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허연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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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빗소리를 듣던’(「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불온한 검은 피) 한 남자가 “왠지 모르게 우리는 텔레비전처럼/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청량리 황혼」, 불온한 검은 피)는 마지막 전언을 남기고 사라진 지 13년, 홀연히 귀환한다. 두 권의 시집에 실려 있는 그의 얼굴 사진은 애인과 정사(情死)한 다자이 오사무처럼 불길하고, 불길한 얼굴이 으레 그렇듯 나이를 종잡을 수 없고, 좌우가 바뀌어 있다. 그는 방황하는 여름 같았던 청춘을 지나 회사원이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 직장에 가는 일을 부끄러워했지만 목숨이 달려 있었으므로, 병원에 가고 출근을 했다. “왜 가난은 항상 천재이며, 고독과 번민이 천재이어야 하나...뭐 시인 만세라고 빌어먹을 너희들은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고, 허군이라고 부르고, 가끔은 젊은 시인이라고 부른다...나는 출근을 한다...나는 지금 목숨을 건다. 지중해에 태어나지 않았으므로.”(「출근」, 불온한 검은 피) 이제 그는, 새 시집의 자서에 이렇게 적는다. “결국,/범인(凡人)으로 늙어 간다./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