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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공기와 총

와락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정끝별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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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을 위한 서정시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허혜정 (문학세계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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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지 않는 비행운

  정끝별 신작 시집의 시들은 소리의 감각에 골몰한 농밀한 결과물들을 다수 품고 있다. 의미 중심의 산문 지향의 시들이 후반부에 여러 편 실려 있기도 하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말 자체의 리듬을 잘 살린 정통적 시형의 시들이다. 그런 시들은 바람을 품고 있는 홀씨처럼 행위의 계기들을 품고 있다. 그것은 어떤 가능성의 실체를 품고 있다고 서술되기보다는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인 가벼움의 동작성을 품고 있다고 서술되어야 마땅하리라. 해설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 점은 표제작인 「와락」의 제목이자 시의 운을 이끌어가고 있는 ‘-락’의 소리의 감각이 이 행위의 실체보다는 동작의 동작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통상 움직임은 시간의 진행에 따른 동작 주체의 공간의 이동을 의미한다. 주체 중심적으로 파악했을 때 운동이란, ‘여기’에서 ‘저기’로의 이동이지만 시/공간 중심적으로 파악했을 때 운동은 ‘지금/여기에 있었음’으로부터 ‘이제/여기에 없음’, (혹은 더 미분적으로) ‘이미/여기에 존재하지 않기 시작함’-‘이제 막/저기에 존재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어떤 초능력자들은 과거의 사람이나 사물의 남아있는 기운을 반투명 상태의 사상(事象)으로 실제로 본다고도 하는데, 이때 남아 있는 에너지들의 시각적 궤적을, 증감하는 농담(濃淡)과 함께 표시할 수 있다면-그때 세계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비행운(飛行雲)으로 가득 차리라- 그 시적 변환 상태를 그녀의 시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정끝별에게 있어 삶이란 항상적인 운동이며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재편이 아니라 세계 자체의 변화로 이해된다. 이는, ‘나’를 ‘동작성’으로 대치한 결과라 해도 된다. 그것은 인식하는 주체가 아니라 지금 막 움직이고 있는 기운으로서의 주체이므로, 정끝별의 어떤 시들은 기동하는 한 덩어리의 공기 같은 ‘나’의 결을 드러낸다. 이 같은 ‘동작성’의 강조는 시인의 반(反)나르시시즘적 세계관을 증명하거니와, 그녀의 시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시의 (디오니소스적이라기보다는 아폴론적인) 조화로운 음악성은 그러한 동작성의 강조와 떨어뜨려 생각하기 힘들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