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 44

나이든 여자들

주민센터에 요가 다니면서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는 아주머니들 사이의 대화. (우리 아파트 옆 동 아주머니와 단둘이 되기 전까지 나는 맨 뒤에서 따라가며 엿듣기만 한다.) 1.“난 쟁기자세가 안 돼. 애기집을 들어내서 그런가, 힘이 안 들어가.”“형님, 그건 애기집 없어서 안 되는 거 아녜요. 전 30대 초반에 들어냈는걸요.(그래도 잘 하잖아요.)” 2.“저번에 친구가 길 가다 넘어졌는데 복숭아뼈가 으스러졌지 뭐야.”“젊어 술 좋아한 친구들은 고관절에 죄 철심 박고 있더라고요.” 옆 동 아주머니가 어제는 요즘엔 동해에서도 홍어가 잡히더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日常 2016.08.27

폭염 속에서 전지구적인 고민은 인류를 잠식한다

백만 년 만에 쓰던 글을 저장 직전에 잃어버리면,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남극에서 빙하가 녹을까봐 에어컨을 안 틀어주는 전지구적인 도서관 직원의 혼란스러운 눈망울과 마주했을 때처럼 하소연할 데가 없어 비참하다. "저도 정말 헷갈려요... 빙하가 녹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하고..." 그녀는 고민에 휩싸여 정말로 아노미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땐 정치적 올바름이고 지구네트워크고 환경론이고 에코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흙바닥 위의 펭귄보다도 불우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 네, 당신의 지구적인 고민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더워서 땀범벅이 되어 지쳐빠진 채 허탕치고 집에 돌아가 각자 에어컨을 틀면 빙하는 더 빨리 녹을 텐데? 도서관은 책 보러 오는 곳이고, 너무 더우면 책을 볼 수 없..

日常 2016.06.28

침묵, 聖 요한의 집, 20130420

같은 산길에서 같은 나무 등걸과 따로 따로 마주쳐 우리는 각각 사진을 찍었다. 동생의 나무 등걸 사진은 유적지 풍경 같았고, 내가 찍은 사진은 명백하게 지나치게 유머러스한 인간(이나 동물)의 사체의 패러디였다. 그것은 다소 키스 헤링 식으로 단순화된 네 발 달린 짐승의 사체와 닮았는데, 그것도 머리를 자른 것이다. 뭉툭한 팔 다리는 몽둥발이처럼 되다 말았고 심지어 꼬리가 잘린 흔적까지 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나무의 시체인데, 이 나무는 동물을 패러디하고 있다. 이 글은 전혀 신성하지 않다. 침묵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침묵은 고통에 어울리는 것. 열정이기도, 수난이기도 한 passion은 주체할 수 없는 자기의 충혈된 에고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자가 그것을 극기하려 할 때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日常 2013.04.30

고향

다지마 선생님은 오늘 저녁 한 나절 백양로 벚꽃 아래서 술 드시고 올라 오셨다. -왜요? -일본 사람이니까. 다지마 선생님은 불콰해진 얼굴로 아이처럼 웃으며 말하고 집에 가신다. 귀가 인사하러 내 자리에 오신 것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평일에도 휴일에도 연구실에 나오시던 아버지 동갑내기 다지마 선생님은 오늘 저녁 한 나절 백양로 벚꽃 아래서 고향에 다녀오셨다.(2012-04-19)

日常 2012.04.20

4.11 전후

몇 년 만에 만났는지 모르겠다. 신촌에서 밥을 먹었고, 12년 전의 이야기들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가버렸나. 그 동안 두 명은 미칠 뻔했고, 두 명은 미쳤으며, 그 중 하나는 미쳐서 죽었다. 그녀는 앞으로 20년 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거시적인 시간관에 놀랐다. 나는 인생을 계획해본 일이 없다. 배워야겠다. 그녀가 끼고 있던 귀고리를 빼서 내게 주었다. 가끔 선배들의 너그러움에 놀란다. 바람이 무척 불었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카페 테라스에서 한사코 바람을 맞으며 앉아 가끔 끊어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동안 자기가 구성되어온 맥락을 빨리 업데이트시켜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에 우리는 거의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나의 농담을 ..

日常 201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