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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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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詩神-屍身)의 뜬 눈 7월 14일의 일기.1. 시 쓰기의 숨겨진 목표는 (시인에게까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그 목표는) 시를 죽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수영은 그것을 "이제까지의 시를 폐기하는 것"이며, 잠정적으로는 자기의 갱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를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시를 죽이는 일'이라면, 그는 시(자기의 온몸인, 시 쓰기의 순간에만큼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혼신인)-로서의 자기를 죽이려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시를 죽이려 하는 것일까? 지금 당장의 시를 죽임으로써 정말로 죽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2. 시를 죽이는 시 쓰기는 죽지 않는다. 자동기계.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을 욕망의 기계로 이해한 스피노자의 유물론적 관점을 부각시켜 이어받은 들뢰즈..
먼 문학 문단 밖에서는 관심도 없는데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우리끼리 문학이 죽었네 살았네 빈사 상태네 좀비가 되었네 여러 견해들을 참으로 복잡하게 표방했었지... 그런데 그 역사적이고 보편적이며 미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은 한국문학과는 너무 먼 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어느새 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환유되어버린 한국문학은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 있네... 인류의 대표로서 쓰는 선후배 동료 은사들이 아직 적잖게 있는 걸 난 분명 알고 있는데... 한편, 모르쇠->부인->꼬리자르기->책임 소재 떠넘기기->비판이 쇄도하자 대리인이 사과의 제스처->조속한 대응 약속. 대표적인 진보문학 진영을 자처했던 출판사의 일련의 대처는 보수 정권의 메르스 임기응변과 너무 닮아서 소름끼친다. 문학과 한국문학 사이는 (아직도) 너무 먼가보..
학원 가기 싫은 날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국에는 두 가지 유형의 모자관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는 유형이고 두 번째는 '학원 가기 싫은 날 엄마를 이렇게 저렇게 먹는' 유형이다. 아, 아니구나. 이 두 가지는 같은 유형인지도 모르겠다. 저 논란 속의 '동시'는 예술성의 수위 문제 이전에(여기에 관해 논하려면 시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영상물의 등급 심의에 관해 먼저 논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가학-피학적인 한국적 모자관계의 역학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생각난다고 다 쓰는 걸 예술성의 핵심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쓰여진 표현이 오직 금기 파괴적이어서 예술적으로 호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을 강제하거나 굴욕감을 주는 부모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