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으로부터 7년 만이다.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인 우리로서는 시집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시 쓰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하는 일이 없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전업 시인 김영승은 지난 시집에서 “나만이 나의 노예”(「G7」)라는 ‘정신의 위대’와 “하긴/전당포에 외투를 맡긴/마르크스의 아내가 무슨 놈의 품위”(「가엾은 아내」)라던 ‘극빈의 위력’ 사이를 “매달려/늙어가는 호박은, 끌려가지는 않는다”(「매달려, 늙어간다」)는 긴장과 자긍심으로 생존해냈다. ‘생존해냈다’. 슬로터다이크의 말처럼 “사회적 삶은 안전한 은신처가 아니라 온갖 위험의 원천이다. 그렇게 되면 태연자약은 생존의 비밀이 된다.” 그러나 이 태연자약은 독자를 부끄럽게 한다. 그의 생존은 2300여 년 전에 디오게네스가 90세 넘게 살았다는 소문보다 더 기적적으로 여겨지기 직전이다. 적어도 디오게네스의 시대에는 왕이 그에게서 지혜를 보았고, 시민들은 그를 존경할 줄 알았으니까. 그리하여, 독자는 그의 희귀한 생존을 디오게네스가 예고하던 희랍 세계의 황혼보다 더 짙은 풍요한 일몰의 광휘 속에서, 본다. 볼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는 여러 모로 ‘견유파(犬儒派) 시인’이라 칭할만하다(학문이란 저작물의 집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천인 생활의 태도임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견유주의자들의 신조를 견유‘학’이라 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테다). 그가 자처한 극빈의 삶도 그렇거니와 자연과 자유를 일치시키려는 태도 속에 보이는 반인간중심주의적인 인간주의도 그렇다. 조롱과 풍자는 물론이다. 사회가 제공하는 가짜 쾌락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무소유가 뿜어내는 당당함은 김영승의 징표다. 첫 시집 "반성"의 주된 동기를 이루고 있었던 인습과 체제에 대한 반항은 그로부터 그 어떤 ‘주의’보다도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으로 태어났던 것이리라. 견유파는 조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조직도 거부하기 때문에 파괴적이다. 그는 자연과 우주와 하나인, 그리하여 신의 친구인 세계 시민이므로. 그는 “가서/부지런히 <투표>나 하자/나는 나만을 지지한다고”(「G7」,"무소유보다 찬란한 극빈")라고 했었고, 물론 이전 시집보다 독설은 줄었지만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사회화’에 대한 줄기찬 저항의식은 버릴 수 없는 그의 핵심이다. 그리하여 “치욕은 묻는다는 것/밴다는 것 吸收된다는//것//그것도 모르지 인간들아/너는 吸收되었다 배었다//組織에 團體에/女子의 性器에//吸收되어 겨우/極樂을 누린다. 나는 雨傘을 집어던졌다.”(「튀긴 물...」) 그는 ‘우산을 집어던졌다’. 그는 흡수되지 않고 온몸으로 흡수한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그는 적잖이 점잖아졌다. 혹은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이 시집 전체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울음’이나 후회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는 첫 시집에서부터 ‘킥킥’이나 ‘히히’나 ‘하하하’ 같은 웃음의 의성어를 자주 사용했었다. 홍소는 그의 무기였고, 그것은 견유적인 그로서는 아주 당연하게도 ‘짖기도 하지만 물어뜯을 줄도 아는 개’의 조롱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자신이라는 원수-이웃이 있었는데, 그는 “‘변형’되지 않는다 그것이/나의 ‘모순’이지만 내 안엔/이 세상의 그 어떤 방패라도/막아낼 수 없는 ‘창’과 이 세상의/그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함께 있다 그것이 나의 비극”(「인생」,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이었다. 이제 그는 잘라버리고 싶은 그의 손을 그의 손이 맞잡게 한다. “내 손을/나는 내 손으로 수갑을 채운” 그 다음, “마주 잡은 내 두 손이/참 따뜻하다”(「손」)고 쓴다. 이 자신과의 (어쩌면 불가피했을) 화해 때문일까. 마침내 그는 ‘조직에 단체에 여자의 성기에 흡수된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비 맞고 천천히 위로 자라는 오이에 더욱더 가깝다. “오이는/자기를 때리며//허공을/휘감고 오르는//파도처럼//오르는 것인가/.../오이는//공중에//떠 있다//혼령이다”(「오이」). 그리하여 “나 죽으면//나의 苦痛, 나의/울화통, 나의 표정 등은//누가 승계할까요//나 죽으면/나는 滅種,//代가 끊기는 것이지요.//나는 인류역사상에/前無後無한/‘人間’이었으니까요.”(「슬픈 똥」,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라던 시인은, “歸嫁하는 칠면조처럼/妻子를 이끌고 歸嫁”(「사람 안 괴롭히기」)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이해하는 것일까. 처자를 거느린 디오게네스는 이제 21C의 가짜 쾌락과 필요의 풍요 속을 어떻게 뚫고 갈까.
독자는 그의 자조(自助) 사상의 순교 혹은 타락을 상상하느라 머리가 아뜩하다. 아테네는 열매 달린 나무들이 천연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최소한으로 이루고 있었거니와, 시민들 속에서 “‘전무후무한 ‘인간’이었던” 디오게네스는 왕의 호의와 시민들의 경의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멸종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염려도 독자의 것, 시인의 견유주의적인 명랑성은 독자의 대리 우울을 집어치우라고 한다. “해병대 용사보다도 특전사 용사보다도/나는 더 강인한 정신으로//잘 살아남을 것이다 뱀을/生食하며”(「성냥」). 그리고 “폭우 쏟아진 뒤/이 화창,//그게 죽음이리라//나의 죽음이리라”(「화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