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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I scream'과 늑대-이것은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스크림과 늑대(랜덤시선29) 상세보기
이현승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1996년 「전남일보」신춘문예, 2002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현승 첫 시집. 총 3부로 나누어 담은 이번 시집에서 끝을 알기에 약해지는 이가 아니라 그로써 그 끝의 다음으로 향하는, 무엇보다 머리가 아닌 손과 발이 분주하고 바쁜 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극과 극은 원으로 하나 되기에, 시인은 삶이란 걸 무상으로 포장하는 듯 보이나 성실함, 매번 그 포장지를 새로 사들이고 정성들여 가위질한 뒤 리본을

서평) 이현승, <아이스크림과 늑대>(랜덤하우스, 2007)
 

이현승의 <아이스크림과 늑대>를 읽으면 누구나 ‘아이스크림’과 ‘늑대’에 관해, 시집에 만연한 ‘식사’와 ‘식탁’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그것은 “타자들의 소멸로 잠시 발광하는 생명의 식탁”(김혜순)이라든가, “식탁의 유물론......오해와 오인과 어긋남을 그윽한 진실로 삼아 흘러가는 삶”(이장욱),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도망가는 늑대와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의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인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인 자기에의 배려를 통해 이 허무적 인식에 낙관의 빛을 던지며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시인’(시집 해설, 강계숙)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자. 이 시집에 등장하는 아이스크림과 늑대에 관한 여러 편의 시는 ‘양치기 소년’의 명백한 시적 인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년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고/아이스크림은 녹아내려 소년의 소매를 적시고 있다...이 길 위에서 사라질 아이”(「우는 아이」 부분), “늑대는 늘 배가 고프고/그러니까 늑대는 늘 도망 중이고/결과적으로 늑대는 일과 휴식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식욕을 가지고 있지요”(「늑대가 나타났다」 부분), “도망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늑대/어둠 속에서 두 개의 눈을 밝히겠지/늑대들은 새빨간 혓바닥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거짓말처럼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리지”「늑대와 아이스크림」 부분) 같은 시의 구절들은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조우의 현장을 포착한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우는 아이’의 아이스크림이라는 사물은 시적 화자의 공포에 대한 진술, ‘나는 비명 지른다I scream'의 소리 없는 “삼십 분의 일 프레임”(「꼬리-용의자 P])의 정지화면 같은 것이다. 그는 종종 그 자신을 늑대와 동일시하지만, 나-늑대의 출현을 통해 공포를 생산하려는 것도 그 자신이며, 늑대의 출현에 겁을 먹고 거짓말을 해대는 것도 역시 그 자신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웃음에 관한 이야기다...이것은 공포에 관한 이야기다...공포 속에서도 웃는 사랑이다/이것은 억압에 관한 이야기다(「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라는 말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다 심심해서 늑대를 ‘만들어냈을’ 때, 사실 소년은 늑대의 출현이 완전히 그럴 듯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의 타이밍이 문제되는 거짓말, 꼭 거짓말이기만 하지는 않은 거짓말, 그러므로 그 성패가 완전히 우연한 거짓말이다. 소년이 소리지르자마자 늑대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양치기 소년과 늑대는 공모자다. 양치기 소년은 마치 시인처럼, 아니, 시인은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자기가 불러낸 것에 잡혀 먹힐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유머에 관한 이야기지만...유머를 갖기까지의 이야기다”(「찰리의 저녁식사」) 그러나, 무엇보다,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