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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신(神) 없는 세계에서의 고행

 
지하생활자의 수기 상세보기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문예출판사 펴냄
러시아 대문호의 긴 독백형식으로 쓰여진 작품. 삶에 대한 은폐된 불안과 은밀한 증오에 시달리며 철저히 고립된 곳에 도피처를 마련한 주인공이 초라하고 고독한 공간에서 바깥세상의 모든 가치있는 것을 부정하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모습을 담았다.

문화청첩장)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이동현 옮김, 문예출판사, 1998(1864))

골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다음날 해야 할 일도 잊어버리고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들이는가 하면 온갖 토론방을 드나들며 독설을 퍼붓는다. ‘세상은 너무나 한심한 사람들로 들끓고 있다. 저 한심한 오랑우탄들이 나를 진작 알아보았다면! 내가 여섯 살에 깨달은 것들에 관해 쓸데없는 소리들을 지껄이고 있는 ‘그들’, ‘그들’이 조금만 더 똑똑하고 예민했더라면!’-우리는 그/녀를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조금만 더 똑똑하고 예민했더라면 골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그/녀는 행복하고 세상은 보다 덜 한심했을까? 혹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다른 종류의 분노와 독설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왜 그/녀는 누구보다 강한 수치심과 낯가림에 시달리면서도 ‘한심한 이들’의 인정을 끊임없이 바라고 있을까?

여기,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었던 140여 년 전 러시아에서 지하에 틀어박혀 혼자 자신의 머릿속에 오가는 온갖 독설들을 풀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내가 방금 뱉어놓은 온갖 토사물들을 헤집어가며 관찰하는 일과 같아서, 우리가 성선설을 인정할 만큼 선한 인간이 아닌 이상, 될 수 있으면 혼자 단지 ‘반성’의 일환으로 일기장에 희망적인 종결어미들로 처리해버리고 싶은 것들이다. “내일부터는 더 성실하고 밝고 낙천적이고 민주적이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뒤집으면 “나는 오늘까지는 매우 게으르고 음습하고 부정적이며 온갖 차별을 일삼고 추악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마음속의 폐품더미는 여러 가지 은폐물들에 싸이고 포장되어서 위선이나 위악으로 드러난다. 억눌리면 부글부글 끓고 악취를 내뿜다가 아주 가끔 뜬금없이 폭발하곤 한다.

그러나 소심한 사람-세심한 사람으로 말을 바꾸어도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은 지워지지 않는다-의 분노의 폭발은 세상의 맥락과는 어긋나게 마련이어서 그는 점점 더 고집스러워지기만 할 뿐이다. 이 지하생활자는 스스로 감금되기를 선택했고 자기 마음의 끝까지 가본다. 세상 모두를 조롱하고 급기야 자기 자신을 조롱하면서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아마도 모든 것을 조롱하는 시선-신일지도 모른다. 그의 ‘자진해서 자신을 감금시키는 행위’는 의외로 수도사의 명상이나 고행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모든 독설의 동기는 사실상 뿌리 깊은 외로움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비틀린 욕망을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을 오가며 인정한 뒤의 그는 지하에서 올라와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라는 말로 시작한 그의 수기가 어떻게 끝나는지는 독자들이 직접 확인할 일이다.

/오리너구리 <성공회대 학보> 20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