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선배나 스승과 잘 논다. 어제 오랜만에 꽝꽝의 은사님과 그의 후배들(나의 직장선배들)과 덩어리 돼지고기를 먹으러 갔었더랬다. 꽝꽝 사람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 칙칙하다.(그 칙칙함이 어느 정도냐면, 1995년 꽝꽝 정문 앞 30m 지점에 문을 열었던 꿈의 패스트푸드점 KFC가 2년만에 망해서 나갔을 정도.) 물론 개중 내가 젤루 칙칙했던 적도 있었다. 근데 어느새 이 착한 칙칙함을 견딜 수 없게 됐으니 난 정말 무지하게 뺀질한 놈이 틀림없다. 나는 선배나 스승을 놀려 먹는 걸 정말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만큼 그들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도 없을 거라고 은근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무척 오만한 놈인 것도 틀림없다. 10년 전의 은사님이 넌 ㅈ선생이 좋으냐,고 물으시기에 그분은 공부를 많이 하시잖아요,라고 했는데 방금 전 은사님의 새로운 목공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던 걸 잊고 한 말이다. 그래, 결론적으로는 또 놀려먹은 셈이 됐다. 하지만 나는, 이건 정말 진심이고 내 정신의 엑기스를 담아 하는 말이지만, 선배나 스승이나 후배나 제자가 죄다 친구처럼 느껴지고 내가 모르는 경험들을 언제나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모두 스승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좋은 스승은 좋은 학생을 키우는 게 아니라 또다른 좋은 스승-친구를 키우는 것일 테다. 제자들이 이쁘고 뿌듯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러운데 지금 이 사회는 소비자 중심주의 교육을 지향하니깐 비지니스에서 애정 같은 것은 자제해야 하는데도 그러면 진선미의 감식안을 키워 경험을 나누고 세상사에 올바르게 대처해 나가자는 문/사/철 교육의 기본 정신 같은 것은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니까 매우 난감해진단 말이다. 다행히 내게도 친구 같은 제자들이 있어서 가끔 내게 농담 따먹기도 하고 선생님도 이제 시집좀 가야죠,라고 머리 굵은 복학생 녀석들은 기어오르기도 하니 천만다행이다. 이제 갓 스물인 녀석들이 어떨 때는 80년대 시를 읽자고도 한다. (보수정당 후보가 지지율 45%인 이런 시대에!) 기억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참 기특하지 않으냐. 그래도 기형도보다는 장정일에 그나마 좀 흥미를 가지는 정도지만 언젠가는 이성복의 찌질함과 시대를 공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나의 사랑스러운 선배 동료 후배 스승 제자 그외 정말로 중요한, '생활하는' 친구들의 눈에서 총기가 사라지지 않기를. 나야말로 늙어 죽을 때까지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매일 미드와 함께 여러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성실을 발명이라도 해야 할 때다. (근데 미드 작가들 파업은 언제 끝나지?)
日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