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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이별의 뒷맛

 오, 어째서 나는 너에게 그토록 친절했던 것인가. 이 씁쓸한 이별의 뒷맛이 도무지 가시지를 않는다.
 
 이제는 형제가 된 첫사랑의 장신구 가게를 찾아가 동생의 생일 선물을 사고 근처 카페에 혼자 앉아 핫초코라느니 그따위 것을 마시며, 어느 시인을 욕한 나의 글이 게재된 학교 신문과, 젊은 시인들의 시선집을 읽는 이 간지럽고 짐짓 우아한 역겨운 문화 생활. 삼킬 수 없는 감정에 설탕을 발라본다.

  이제는 알지 못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이름과 사랑에 빠지는 계절. 얼굴 대신 이름들과 닿지 않는 텔레파시를 주고 받는 상상의 놀이만이 가능한 시절.

 술을 많이 마셔도, 우리의 심장은 포개어지지 않고, 웃음도, 눈물도, 우울도 TV 광고처럼 가벼이 떠나보낼 수 있는 시절.

 어서 지나가라. 그러면 이 시절을, 나는, 아무런 감동이나 미련 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너의 혓바닥 위에 놓인 새빨간 거짓말들도, '텅 빈 구체성'으로 가득 찬 가슴 빈 논리도, 너의 저급한 나르시즘도.

 그리고 그런 주검의 상태로도 살아갈 만하게 놓아두고 있는 이 냉혈한 거리의 법칙도.

 거리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너의 현미경은 대물렌즈 나사가 고장난 지 오래지만, 넌 평생 그게 만화경인 줄 알겠지.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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