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경각심과 동시에 모방 범죄들을 불러온 듯싶다. 그것은 TV를 통해 방영되는 충격적인 화면의 아찔한 (초)현실감이 어쩔 수 없이 불러들이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소문, 소문의 무시간적 확산은 즉각적인 (초)현실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개인의 규율과, 규율을 무시하고 무질서로 나아가고자 하는 가없는 욕망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다.
숭례문의 '추모자들'은 '물리적으로 체화된 역사'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 아니라 마치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 사람들처럼 공포와 연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에 대한 테러였던가? 그것은 테러였던가? 테러의 의미는 무엇인가?
랜드마크 남대문
일차적으로 그것은 '국가적 자존심'에 대한 위협으로 정의되었다. SBS 8시 뉴스에서는 숭례문 붕괴 이후 '자존심을 복원하자' 캠패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언제 남대문을 숭례문이라 불렀던가? 누군가 화재 이전에 '숭례문 앞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걸어왔다면, 나는 즉시 '남대문 말이지?'라고 정정하고 확인했을 것이다. 타고 난 뒤에 '국보1호'라는 수식어와 함께 '숭례문'이라는 위엄 있는 이름으로 거듭난 그것은 '애초에 접근하기 어려웠으며 계속 그랬어야 할' 국가적 기표로 환원된다.
그래서 숭례문 방화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인명살상과는 다른 종류의 테러로 정의된다. 실제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죽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내부로부터 '국가적 자존심'을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결점과도 같은 한 사람이 그것을 '무관심하게' 불태웠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방화범 자신은 그 효과를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숭례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숭례문은 거대한 늙은 인물로 의인화되어 역사를 망각한 자에 의해 희생 제물이 된 셈이다. 이제 그것은 '위인의 죽음'처럼 여겨진다. '그'는 죽고 난 후에야 그 자체로 국가적 정체성을 몸소 보유하고 있었던 역사의 기표로 승인된다. 불탄 숭례문의 흉측한 몰골의 현장은 잘려나감으로써 비로소 강고해진 팔루스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 외설적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이 '불구경'의 희열을 전혀 느끼지 않았으리라 단정할 수 있을까? 그들은 매일 지나다니며 보았던, 좌우의 성벽이 이미 무너진 지 오래되어 단지 하나의 랜드마크로만 각인되어 있던 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으며 열리거나 닫힐 필요가 이미 없었던) 문의 소실을, 화염에 휩싸인 스펙타클로 경험하면서, 일종의 숭고를, 따라서 감성적으로 체험되는 공포와 열락을 함께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스펙타클 - 발화에서 붕괴까지 (매일경제신문 인터넷판)
방화가 강력한 전시적 특징을 가진 것처럼 '불구경'이라는 우리 말에 각인되어 있는 무도덕적amoral 희열은 보는 사람에게 숭고의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다. 갑작스런 물난리나 해일, 장대한 스케일의 풍경 앞에서 사람들이 압도되고 <투모로우>나 <볼케이노> 같은 영화에서 사람들이 공포와 함께 불가항력적인 '절멸'의 광경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줄을 잇는 추모의 행렬은 마치 그 열락에 대한 죄의식을 탕감받고자 하는 후속 행위처럼 보인다. 숭례문 추모가 말 그대로 '교훈'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화재 예방 교육을 위한 것인가, 애국심의 고양을 위한 것인가, '싸이코의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서인가?
그런 점에서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것과, 역사적 중요성이 노골적으로 강조된다는 점을 제외하고 숭례문의 소실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와 마찬가지로 폭력의 숭고를 통한 '실재와의 조우'로 경험된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부랴부랴 사후적인 정의들이 빠르게 구성된다. '충격'을 '설명'하기 위해 과잉된 개념 정의들이 뒤따른다. 방화는 숭례문에 대한 폭력이지만, 불타는 숭례문은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폭력이다. 방화는 상징에 대한 폭력이지만 불타는 숭례문은 대중의 일상생활을 구조화하는 상징 체계의 균열을 시사한다. 사람들은 그 둘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애초에 방화범의 방화의 동기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불만의 전시였는데, 결과적으로 초기 화재 진압 상의 실수나 관리 상의 허술한 실태를 통해 공권력의 무능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의 동기는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었을 뿐아니라 과도하게 성공했다는 점이다. 전시의 의도는 폭로로 귀결되었으며, 이 폭로의 외설성은 대중으로 하여금 공권력에 대한 반발과 개탄에 동참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공권력은, 방화범 '개인의 토지 보상에 관심을 가져야 할 권력'이 아니라 '민족적 자존심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권력'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중이 정부보다 더 국가/민족 기표의 강화를 희망한다는 진실과 마주친다. 부모와 함께 숭례문을 찾은 아이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쓴다. 어른들은 '숭례문은 애초에 접근하기 힘들도록 개방되지 말았어야 했다'거나 '결과적으로 공공기관의 관리 소홀이 재난을 불러왔다'고 공권력을 비판한다. 이 같은 상상적 책임 전가는 '백악관이 사전에 테러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는 음모론과 일맥상통한다. 마치 강도에게 살해된 아버지의 시체를 보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어야 했다'고 자책하거나 '아버지가 죽을 때 경찰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책임을 묻고 나아가, '경찰은 알면서도 범죄를 방치했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아버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끊임없이 사랑했던 대상으로 재규정된다. 이제 정부보다 더 애국적인 시민들에 의해 국가/민족 의식의 강화가 이루어진다. 사실 통치자는 통치한다는 사실을 사랑할 뿐, 통치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중은 언제나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본다는 것은 그 후속 행위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초래한다.
불타는 숭례문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던 미디어는 바로 그 자신이 펼쳐 보이는 외설적 광경이 야기한 대중의 충격과 공포 때문에 실제로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다 같이 상징적 죽음을 경험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대신 추모자들의 국화꽃을 카메라에 담음으로써, '불구경을 했다'는 전국민의 부채감과 자책을 약간 탕감시켜 줄 따름이다. 심지어 미디어는 충격이 민족적 자존심을 오히려 강화시켰다는 데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숭례문이 된 남대문 (중앙일보 인터넷판)
이런 조건들 하에서 "'국가/민족'이란 허구적인 기표"라고 주장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상징과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얽혀 있으며 '나'를 구성하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상 허구적인 기표들이기 때문이다. 이 기표들은 실재와 경계를 짓고 '나'를 비로소 주체로 만들어주는 육체가 된다. 문제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닐지라도,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의 우연성을 알고 있는 동시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우연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을 때 외설적 폭로와 마주쳐 기표는 강력하게 물신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숭례문의 잔재를 허술하게 처리하는 공권력에 너무 화가 나' 불탄 숭례문의 기왓장을 인터넷으로 경매하려 했던 사건은 이제 '숭례문이 된 남대문'의 외설적이면서도 신성한 팔루스적 성격과 그 물신성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