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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동경외대 번역 워크샵 강연문

 

초청해주신 정기인 선생님과 제 시집을 선택하고 읽어주신 동경외대 조선어학과 학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질문을 전해 받고 생각한 바를 적어보았습니다.

 

1. 시, 시인, 시 쓰기, 시와 사회

 

 

최초로 쓴 시가 어떤 시인지, 그 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적 장래희망은 사립탐정이었습니다. 여덟 살 때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을 읽은 후부터였지요. 저는 늘 비밀에 관심이 많았고, 수수께끼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사립탐정이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실망했습니다. 열한 살 때 처음 숙제로 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학교에서 배운 ‘시라고 생각되는 것’을 의식하고 쓴 것이었을 따름입니다. 자발적인 내적 욕망으로 처음 시를 썼던 것은 열두 살 무렵이었습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었고 생체시계가 빠르게 돌고 있었으며 호르몬이 치솟기 시작한 때였지요. 여느 때처럼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면서 작은 치자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이 작은 화분에 역시나 매우 작은 민달팽이가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민달팽이가 느리게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한 시간쯤 관찰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습니다. 열 편 가까운 시를 썼어요.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두 편 정도입니다. 하나는 “숲으로 가자”는 몹시 목가적이고 운율을 맞춘 시였고 또 하나는 “여우와 갈매기”라는 우화적인 시였는데 바닷가 숲까지 멀리 날아온 갈매기를 처음 만난 여우가 날지 못하는 자신을 놀리는 갈매기에게 약이 올라 갈매기를 따라가다 벼랑에서 어쩔 수 없이 멈추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갈매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돌아보니 두 편 모두 지금 여기 말고 어디 다른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이 들어있던 것 같네요. 시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 뒤로도 혼자 계속 시를 썼습니다. 정신적인 탈옥 시도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요.

 

소설 등 다른 매체가 아니라 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언제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는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좋아서 계속 하고 있으면 이미 그걸 하는 사람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에는 그런 느슨하고 느긋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세상은 자꾸만 분류하고 구분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주는데, 저는 그런 극심한 분업화에 따른 전문화가 반인간적이라고 느낍니다. 시는 판매 경쟁이나 성과 보고 같은 것과는 다르고, 오히려 그 같은 반인간적인 삶에 대한 의도적인 태업, 사보타주에 가깝지요. 때때로 시적인 상태에 처하고 그것을 그리거나 쓰거나 노래하거나 움직임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모두 넓은 의미에서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요점은, 그것을 내내 즐기고 있느냐의 문제이지요. 그런 일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가는, 특히 시인은 직업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지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저를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등단제도를 거쳤고, 시를 계속 발표했고, 특히 시집을 출간한 후부터 더욱 그렇습니다. 제도 안에서 시인은 앞서 말한 것처럼 ‘멍 때리며 민달팽이 따위를 관찰하는 사람’ 등으로 정의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은 거기에—멍 때리기에, 알 수 없는 민달팽이의 알 수 없는 노동을 끝없이 관찰하는 데에 있다는 강력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앞서 언급한 르블랑의 <기암성>, 그리고 북유럽 신화를 유별나게 좋아했습니다. 10대, 20대 시절에는 헤르만 헤세, 카뮈, 르 클레지오, 로브그리예, 도스토옙스키 등 주로 실존주의-누보로망 작품과 황지우, 김정환, 이인성, 최수철, 임철우 같은 80년대 한국 시, 소설, 그리고 이토 준지의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김수영과 김춘수로 각각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철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는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한 반명제로 작용했다고나 할까요. 이외에도 페터 슬로터다이크나 슬라보예 지젝을 좋아하고요. 외국 시인 중에서는 기유빅과 앤 섹스턴을 좋아합니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한창 힘들 때 용기를 얻었던 책입니다. 최근에 제 오랜 친구가 번역한 타와다 요코의 <헌등사>를 읽었는데 특히 희곡 “동물들의 바벨”의 시적인 대사들과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과 범죄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 작가로써 바라본 현대한국사회에서 여성의 모습은?

여자가 쓴 시와 남자가 쓴 시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몹시 복잡하고 까다로운 여러 문제들을 동시에 껴안고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이 나왔을 때 한 여성 선배 시인이 제 시집의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남자가 쓴 시 같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뉘앙스인지 종잡을 수 없었어요. 저는 장난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속에 아저씨가 한 명 살고 있나 봐요.” 그런데 저는 그 선배 시인의 말이야말로 여성과 남성의 발화방식, 글의 스타일, 내용, 주제, 대상 등에 대한 분리를 강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타와다 요코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만, 저는 타와다 요코의 작품들이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불리어왔던 스타일보다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스타일을 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22세에 독일로 건너가 그곳에서 데뷔한 것과 어떤 영향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표제작인 “헌등사”에서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중심인물로 그려지고 심리 묘사도 상세하게 보이지요. 그러나 뷔히너가 21세기를 살았더라면 “끝없이 달리는” 같은 여성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쓸 수 있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시든 소설이든 좋은 작품은 그것을 쓴 사람의 직간접적인 경험들을 섬세하게 경유하여 직조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양 여성의 삶을 살면서 백인 중년 남성들이 작가의 태반인 고전 텍스트들을 많이 읽었다면 그는 발화방식이나 스타일에서는 고전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았을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보누보로망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르 클레지오가 데뷔 10년도 안되어 어린 소수민족 여성이 화자인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얼마나 큰 결심과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는지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조각 같은 미모를 지닌 남성적이고 모던한 프랑스 문학의 아방가르드라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완벽하게 갈아치울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프랑스 평단은 그 후부터 르 클레지오에 대한 열성적인 칭송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만일 여자가 쓴 시와 남자가 쓴 시가 매우 다르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남자의 삶과 여자의 삶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그 차이점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시를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다. 주제를 미리 정해서 시를 쓰는지, 혹은 쓰면서 어떤 의미를 담을지 생각하는지. 어디에서 착상을 얻는지, 바로 첫줄부터 쓰는지, 아니면 전체적인 구성을 생각한 후에 쓰는지 궁금하다.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 많은지, 아니면 상상으로 쓰는 것이 많은지도 궁금하다.

 

보통은 첫 구절이 나오면 한 편을 통째로 씁니다. 전체적인 구상이나 기획보다는 첫 구절이 나올 때의 기세나 어조, 태도 같은 것이 다음 구절을 이끌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속으로 되뇌거나 떠올리던 이미지나 단어, 구절 등이 어느 날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한꺼번에 쏟아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워즈워드도 시를 “두 번 회상된 정서”라고 한 적이 있지만, 인상적인 사건이나 사람, 사물, 분위기 등이 기억에 남으면 경험된 그 순간으로부터 일종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시작(詩作)은 어떤 의미에서건 어떤 ‘기억’과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그 기억은 최초의 풋내는 좀 가셔 있고,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 향수의 감정이 다소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인상에 잠겨 있는 ‘나’는 한편으로는 그 시간을 다시 경험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감각의 현재성을 풍기게 되겠지요. 거기에는 종종 상상이 덧붙여지기도 하는데, 구절들의 진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상이 이어지는 것이라서 특별히 목적성을 가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 한 편의 전체적인 비율이나 완성도는 퇴고 과정에서 조율됩니다.

 

한국에서 가장 관심있는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요즘 한국에서 문학 작품의 주제가 되는 사회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단연 젠더 이슈입니다. 2016년 말 트위터에서 각 분야의 성폭력 폭로가 있고 2017년 가을, 김현 시인이 “질문 있습니다”라는 에세이를 통해 한국 문단의 둔감한 성 인지 감수성을 문제 삼은 이후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면서 한국 문학은, 다른 예술 분야도 그렇지만, 그동안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던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로서의 여성과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필연적인 변동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사석에서는 혹시 자기도 모르게 폭력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글 쓸 때마다 두렵다는 고백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져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만간 내면의 양심과 관습의 변동이 조율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넷플릭스에 2016년 이후 올라오고 있는 작품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시를 쓰면서 힘들 때가 있는가?

 

라캉이 주이상스라고도 부르는, 글쓰기에 수반되는 ‘고통이 수반되는 향유’를 차치하고 이야기한다면,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읽고 쓰는 분들이니 아시겠지만, 좋아서 하던 일을 계속 하다가 그것이 일이 되면 압박감을 느낄 때가 때때로 있지요. 그래서 등단 초기에는 재고가 없으면 청탁을 안 받는 규칙을 지키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고 삶이 복잡해지면서 내내 그렇게까지 여유롭게만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전혀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시 원고 마감이 다가올 때처럼 물리적, 시간적으로 쫓긴다든지, 사회적으로 큰 변동—충격적으로 퇴행하는 정치 상황이나 세월호 참사, 미투 같은 사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사유의 커다란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백지 위에서 운을 맞춰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많은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도 그랬으니까요. 2013년부터 한 5년 간 한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맡았는데 세월호 참사 직후 많은 작가들이 펑크를 내어 잡지가 무척 얇아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산 참사 국면이나 미투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런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그 외의 어려움은, 꼭 시 쓸 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저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대개 자기와의 싸움과 관련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2. <울프 노트>에 관하여: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

 

시인은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시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을 언제 경험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왜 사랑인가? [독감유감 2]에서는 사랑은 환상이지만 믿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둘의 진화]에서는 마치 사랑을 믿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시인은 사랑을 믿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샬롬]을 읽으면서, ‘양의 얼굴’이라는 어구가 충격적이었다. 동물이라는 타자, 그리고 [샬롬 2]에서 ‘여자 거지 김태희’라는 타자. 시인은 동물을, 또는 이러한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대개의 동양 문화에서 그러리라고 생각되지만, 저 역시 “사랑”이라는 말을 자주 입 밖에 꺼내는 사람은 아닙니다. “독감유감2”에서의 ‘사랑’은 분명히 연애감정으로서의 사랑을 의미하고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독감은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일정 기간을 반드시 앓아야 하지요. 사람들은 독감과 감기를 종종 혼동하지만 독감은 분명히 ‘감염’된다는 점에서 감기와 다릅니다. 게다가 흔해서 그 중대성을 남들은 몰라주지만 앓는 사람은 몹시 호되게 앓아야 하고요. 그런 점들이 보편적으로 우리가 앓는 연애 감정의 어떤 특성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앓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리 낮은 치사율이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이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 영원히 헷갈리고 있는 상태에 처하지요. 전에 걸렸으니 이번엔 안 걸릴 것 같지만 독감 바이러스는 변종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랑’의 개념을 재구성해야 할지 폐기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게 되지요.

 

그 시는 대략 30대 초중반에 쓰여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시집에 시를 거의 전부 발표순으로 수록하기를 고수했는데 <독감유감2>만은 첫 시집으로부터 누락되었던 것을 이번 시집에 수록했기 때문에 서효인 시인의 결혼 축시로 쓰여진 <둘의 진화>로부터 시간적인 거리를 두고 있기도 하고, <독감유감2>에서의 화자는 호되게 독감을 앓고 있는 중이므로, 평생을 같이 하기로 한 두 사람에게 주는 시에 제가 표현한 사랑의 보편성에 관한 이념적 확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에 관해 말하자면, 저는 사랑을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가 모든 이상적 관념에 관해 가지는 태도—행복, 평화, 우정, 무엇보다 신(神)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렇듯이 그 내용에 관해서는 약간의 수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입장의 변경은 개종과도 같이 엄숙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는 신의 이름을 다르게 부를 수 있지요. 모하메트라든지 여호와라든지 예수라든지 붓다 등의 다른 이름들로 호명할 수 있고, 이들은 관습적으로 다른 아우라와 뉘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신의 이름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 ‘이름’에 대한 숭배 때문이 아니라 이 이름들로 은유되고 있는 이념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은 제가, 그리고 아마 여러분도 평생 고민해왔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쓰고 있듯이,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타자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질문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가령,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명백하게 그릇된 행동을 하고 있는 의미 있는 타자와 도저히 대화를 통해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경우, 다음 중 무엇이 그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의 그릇된 행동을 용인하는 것인가, 그를 계몽하는 것인가?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은 전자의 극단적인 경우를, ‘폭력적 가장’은 후자의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줍니다. 광신도 집단의 신도들이나 독재자의 경우로 이 샘플을 보다 확대할 수도 있지요. 그들은 모두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로맨틱한 관계에 관해서건, 종교적이고 국가적인 문제에서건 이 질문이 지금의 저에게 주어진다면, 저는 우선 자기의 욕망을 분명히 하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사실 구체적인 케이스들에서는 일반적인 격률이 되기 힘들죠. 저는 로티에게 유연성을 배우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는 아직도 플라톤주의자이며 동시에 칸트주의자입니다. 20세기 이후로 ‘타자’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 사상적인 여러 주장들이 제출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칸트의 도덕적 황금률—"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언제나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 하라."는 것과 “너 자신의 인격이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서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하라.”—이 타자와 마주한 우리의 구체적인 순간들에서 늘상 새로이 해석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없다면 우리는 동물의 처지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울프 노트]에서 간혹 2인칭으로 지칭하는 시들이 나오고, 이 시들은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만큼 단호한 목소리로 ‘너’에게 말을 한다. ‘너’를 규정하고, ‘너’를 계몽하는 것 같다.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까지 한다. 물론 여기서 ‘너’는 시인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기도 하다. 왜 이러한 2인칭을 시도했는가? 또 관련하여, 왜 ‘울프’라는 가상의 인물, 또는 또다른 시적 자아를 설정했는가? 정말 시인은 [나는 왜 당신을 선택했는가]처럼, 자신의 공부와 문학에서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는가?

 

[울프 노트]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빅 픽쳐는 무엇인가?

 

저는 시에서 전통적인 서정시의 화자가 흔히 ‘나’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2인칭이나 3인칭을 쓰는 경향이 있어요. 첫 번째 이유는 쑥스러워서입니다. 쑥스러움은 부끄러움이나 창피함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적인 감각에 대해 제가 지닌 소유욕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너’에 대한 규정과 계몽의 공격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시에서 ‘너’는 ‘나’의 변형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시에서 ‘너’는 제가 본 특정 유형의 실제 인물들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견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은 종종 뒤섞입니다. “나는 왜 당신을 선택했는가”에서 ‘당신’은 제가 목격한 어떤 유형의 인물 일반을 겨냥하고 있지요. 이 시의 주된 인물은 화자인 울프 씨와 편지를 받는 ‘당신’이고, 그 ‘당신’은, 사사키 아타루의 말을 빌리면, ‘문학이 끝났다고 말하고 그 우울에 빠져 있으면서도 관성적으로 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공부가 산학 협동이 되는 것을 무수히 보았고, 문학이 상품이 되는 현실을 끊임없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떠나지 않는 한 그것은 변경 불가능한 우리 삶의 필연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시는 ‘내’가 그 일부일지도 모르는 어떤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심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삐끗하면 미래에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나’에게 또 다른 ‘나’가 보내는 경계의 말에 가깝습니다. 독자가 그것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울프 씨는 성공한 것이겠지요. 그는 어딘가에서 계속 편안한 일상을 도발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니까요.

 

론 울프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한 것은 애초에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빅 픽처’를 그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여러 번 다른 지면에서 밝힌 바 있지만, 이 인물은 첫 시집의 후반부에서 <론 울프 씨의 혹한>이라는 시에 등장한 이후, 자기의 휘발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마치 제가 ‘론 울프’라는 의뢰인의 변호인 역할을 맡고 있는 듯하지만, 론 울프 씨는 분명 저에게서 나왔으나 이후의 연작시들은 이 인물의 성격에 의해 다소 독자적으로 전개된 부분이 있어요. 소설이 왕왕 그렇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뫼르소를 카뮈의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카뮈와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카뮈에게 왜 이유 없이 사람을 쏘았냐고 물을 수는 없어요. 물론 저는 카뮈가 그 보상 심리로 <페스트>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방인>이 없었다면 <페스트>도 없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시를 발표순대로 실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뒤의 시는 분명 그것 자체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앞의 시와 직간접적으로 인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뒤의 시를 쓰는 저 자신은 앞의 시를 쓴 저 자신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저이기 때문입니다.

 

시집 <<울프 노트>> 중에서 어느 시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다.

 

저는 시가 쓰는 사람의 가장 내밀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미도 있어야 하는 아슬아슬한 장르라고요. 그러니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의 가공 처리된 내밀한 말들에 대해 ‘마음에 드는’ 법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난 내 말을 사랑해’라고 말하는 나르시시스트에게나 해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는 부분을 꼽자면 첫 시집에 계속 출몰하던 크루소 씨나 이번 시집에서 계속 출몰한 울프 씨에 이어 아마도 ‘병조림인간’이 다음 번 변사(辯士)를 맡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그에 관한 시를 쓸 때 저는 제 친구 한 명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병조림인간 역시 그 이후 독자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에게 강한 연민을 느끼고 있습니다.

 

[축일]을 읽으면서는 세월호를 떠올렸다. [축일]을 쓰면서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궁금하다.

 

그 시 역시 저의 오랜 친구(병조림인간의 모델과 다른 친구)를 떠올리며 쓴 시입니다. 저는 자주 관조적이 되는 사람이라 어느 죽여주게 화창한 날, 현재적인 감각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 친구에게 무언가 축복하고 싶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는 발표되고 나면 독자의 몫이므로, 다른 콘텍스트의 뉘앙스로 읽히더라도 핵심적인 감각이 전달되었다면 기쁘다고 생각해요.

 

시를 번역할 때 한국어 어미의 다양함(~겠/~ㄹ 거야/~지/~ㄴ다 등)을 일본어로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어미를 다르게 쓴 것은 역시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제가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 정말 유감입니다. 어떤 언어에서건 그렇겠지만, 시는 집중된 정서를 보여주기 원하기 때문에 짧은 텍스트 안에 전체 분위기와 정서를 공유해야 하므로 구두점 하나도 신경 써야 하는 장르입니다. 저는 특히 어조를 통해 태도를 표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일반적인 시작법에서 금지하는 부사어나 접속어를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어미가 큰 작용을 하므로 입말을 살리기 위해 어미의 변화가 잦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이 풀렸는지 모르겠네요. 생각보다 긴 글이 되어서 민망합니다. 모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끝)

-2019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