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243)
이해와 오해 꼬마 한스와 도라(프로이트 전집 8)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지그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2004년) 상세보기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늦으막히 나와 한산한 문과대 독서실에서 "도라의 히스테리 분석"을 마저 읽었다. 프로이트의 서술을 통해 보건대, 그는 도라가 자신을 처음에는 아버지로, 이후에는 K씨로 전이시켜 생각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전이에 관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라 지적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텍스트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 프로이트가 도라에게서 느낀 기묘한 사적 호감이야말로 이같은 '전이에 대한 강조'의 배면에 드리워져 있는 커튼이라는 느낌이 든다. 도라는 프로이트의 꿈을 대신 꾸고 있다는 느낌, 혹은 프로이트는 도라를 빌..
'당신'과 '그들' 사이에서 비명을 찾아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1987년) 상세보기 10여 년만에, 아이들에게 과제로 내주면서 다시 읽었던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그동안 나뿐 아니라 사회적 서정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했다. SF 소설의 형식을 빌려 보여주는, 민족적 울분에 휩싸인 40대 직장인 남성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이에 대한 주인공 히데요의 관점과 반응이 극도로 상투적이고 전혀 신선하지 않은 것이, 복거일이 세계시민주의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토록 상투적인 민족 감정의 왜곡된 형태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따위의 책을 펴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놀랍(지 않)게도,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이것을 과거와의..
기계 속에서의 명상-어제의 일기 MRI/MRA 검사는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검사였는데, 느낌은 20여 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소음이 크다면서 의사는 귀마개용 헤드폰을 씌워주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세심한 건지, 기계의 작동 때문인지, 몸이 닿는 부분이 따뜻했다. 여러 종류의 소음이 일정 시간 동안 반복되었다. 대개 높고 낮은 한 종류의 소음(점점 음이 높아지는)과, '웅웅' 하는 소리와 '찌르르' 하는 소리가 함께 울리는 듀엣 소음, 심지어 이것에 다른 한 가지 소리가 합쳐져 트리오로 울리는 소음도 있었는데, 기계 안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았던 나는, 소음이 바뀔 때마다 그 충격을 되도록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일정한 시간 동안 반복되는 소리들을 '감상'하기까지 하였다. 그것들은 외계인이 몰고 온 UFO가 공중에 멈추어 ..
처자를 거느린 디오게네스 화창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영승 (세계사, 2008년) 상세보기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으로부터 7년 만이다.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인 우리로서는 시집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시 쓰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하는 일이 없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전업 시인 김영승은 지난 시집에서 “나만이 나의 노예”(「G7」)라는 ‘정신의 위대’와 “하긴/전당포에 외투를 맡긴/마르크스의 아내가 무슨 놈의 품위”(「가엾은 아내」)라던 ‘극빈의 위력’ 사이를 “매달려/늙어가는 호박은, 끌려가지는 않는다”(「매달려, 늙어간다」)는 긴장과 자긍심으로 생존해냈다. ‘생존해냈다’. 슬로터다이크의 말처럼 “사회적 삶은 안전한 은신처가 아니라 온갖 위험의 원천이다. 그렇게 되면 태연자약은 생존의 비밀..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병원에서 왼쪽 눈에 박힌 쇠붙이를 뽑아내면서 우리는 화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울 다락방에서 사전을 뜯어 먹으면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 여사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가끔 거울을 쳐다보면 내 검은 안대가 훈장처럼 떠올라 경이로운 화염이 혈관을 데우면서 우리들 4월을 되새기게 하지만 지금은 밤 늦도록 다락방에 모여 앉아 펼치는 늙은 학생들 문답강론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물론 하찮은 관형사 하나의 사용법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좀스러움이 새벽길을 닦는 데 얼마나 탄탄한 자갈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참을성 있게 들어줄 수 있는 귀가 열리지 않는 한 4월은 정당하게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만년설을 부수며 전투적으로 일깨우는 새벽은 그 뜨거운 화염으로 근심하는 초목들이 불타고 우리는 검은 억새풀로 아침식탁을 마련해..
풍자와 해탈 사이 차창룡, "고시원은 괜찮아요"(창비, 2008) 차창룡의 신작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는 풍자와 해탈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라는 앞선 시인의 통찰은, 지금의 말로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정치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쯤 되지 않을까. ‘시’와 ‘풍자’라는 말이 일깨우는 예리한 힘은 뚜렷한 몇 가지의 선택지만을 우리에게 제시했던 가시적 폭압의 시절에 아주 잘 어울렸지만, ‘생정치적으로다가’ 우리 삶의 안과 밖을 한 땀 한 땀 오바로크하고 있는 지금-여기에서도 잘만 사용하면 훨씬 더 잘 어울릴 성싶다. 균열이란 균열은 죄다 시침질하고 마는 민활한 문화적 자본주의 세계의 은밀하고 화려한 색색의 실밥들이, 실은 누군가의 피와 땀이며 우리가 봉사세 명목으로 우리도 모르게 자진납세..
The Tea Party, "Temptation" & "Sister Awake"
아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 지역과 세계 사이 Spices는 200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아시아 문화 컨퍼런스의 이름이다. 올해 3회째를 맞아 말레이시아 페낭에 소재한 세인스 말레이시아 대학Universiti of Sains Malaysia에서 8월 7일부터 3일 간 “상품화, 쟁점 그리고 창의적인 문화”라는 제목으로 공식 일정을 진행했다. 아시아라는 광범위한 지리상의 명칭을 문화라는 더 광범위한 학문 명칭과 접목시킬 때 무엇이 출현할 것인가. 이 컨퍼런스는 아직 이런 궁금증에 괄목할 만한 구체적인 지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발표자나 토론자들의 국적은 말레이시아, 부탄, 일본, 한국, 홍콩, 대만, 태국, 미국으로, ‘아시아’를 대표하기에는 너무 적거나 광범위하고, 참가인원은 해당 지역 참관인을 모두 합해도 60명을 넘지 않아 총 11개의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