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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이해와 오해

꼬마 한스와 도라(프로이트 전집 8)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지그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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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늦으막히 나와 한산한 문과대 독서실에서 "도라의 히스테리 분석"을 마저 읽었다. 프로이트의 서술을 통해 보건대, 그는 도라가 자신을 처음에는 아버지로, 이후에는 K씨로 전이시켜 생각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전이에 관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라 지적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텍스트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 프로이트가 도라에게서 느낀 기묘한 사적 호감이야말로 이같은 '전이에 대한 강조'의 배면에 드리워져 있는 커튼이라는 느낌이 든다. 도라는 프로이트의 꿈을 대신 꾸고 있다는 느낌, 혹은 프로이트는 도라를 빌려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 프로이트와 환자들과의 대면이, 우리가, '의사소통'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낭만화했던 지난 시절의 가장 압축적인 형태의 공식적인 사적 사례라면, 그러니까, 우리가 '기적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환희와 함께 지향했던 이상적인 합일에 관한 가장 분석적인 현대적 성찰의 시작이었다면, 정신분석은 최종적으로 우리의 이해가 언제나 오해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묵시론적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셈이 된다.  

*

"도라"를 읽기 시작한 이후 오랜만에 다시 꿈을 연이어 꾸고 있다. 첫날 꿈에서는 젊은 여자가 감상적으로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되풀이되는 넋두리에 지쳐 "이제 그만좀 해! 네 말처럼 죽도록 짜증나고 피곤하고 우울하다면 차라리 죽어버려!"라고 외쳤다(그녀는 도라 같기도 하고 내가 잘 아는 어떤 사람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하고 내가 잘 모르는 또 다른 어떤 사람 같기도 했다). 둘째 날 꿈에서는 엄마가 나타나 알록달록한 유치한 색깔의 장난감을 보여주며 "이건 두 여자가 함께 사용해야 효과가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나는 영어로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효과'라는 말을 'effect'로 들었다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엄마는 지젝스러운 의미에서 외설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현실에서처럼 또다시 그녀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꿈에 대한 관심은 꿈을 불러들인다. 꿈은 유령처럼, 저를 부르는 나직한 주문을 듣고 조용히 사람을 방문한다. 꿈은 비밀스러운 정부처럼,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세계를 체험하게 하고는 제맘대로 사라진다. 사람은 기약없는 기다림 속에 다시 홀로 남겨진다. 그 메시지를 해독하느라 멍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한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수수께끼에 대한 정열 속에서이기도 하다. 사람을 언제까지나 충동 속에 가두어버리고 마는, 절정의 중지 상태, 자이가르닉 효과. 모든 꿈들은, 모든 사랑은, 미완의 것이며, 미완의 것이어야만 그 이념의 구조상 가장 완전하다는 이 고통스러운 진실.

*

오늘 날씨는 참으로 "갓 댐 콜드"하고, 문독의 온풍기는 차가운 공기를 데울 수 없었다. 이 추위와 더불어, 꿈에 관한 분석에 사로잡혀 꿈을 꾸는 일은 분석의 재료를 제공하는 일로 축소되어간다는 불안. 그러니,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은 언제 찾아올까. 대개 뮤즈는, 가장 바쁜 시간에 잠깐 나타나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면 잠시 그녀의 옷자락을 볼 수 있을 뿐, 꿈속에서 보았던, 반쯤만 기억나는 어떤 이름처럼, 혀끝에서 뱅뱅 돌지만 결코 입에 올릴 수 없는 그 이름처럼, 그녀는 언제 미끄러지듯 가벼운 스텝을 밟아야 하는지 귀신같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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