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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병원에서 왼쪽 눈에 박힌 쇠붙이를 뽑아내면서
 우리는 화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울 다락방에서 사전을 뜯어 먹으면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 여사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가끔 거울을 쳐다보면 내 검은 안대가 훈장처럼 떠올라
 경이로운 화염이 혈관을 데우면서
 우리들 4월을 되새기게 하지만
 지금
은 밤 늦도록 다락방에 모여 앉아 펼치는 늙은 학생들 문답강론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물론 하찮은 관형사 하나의 사용법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좀스러움이 새벽길을 닦는 데 얼마나 탄탄한 자갈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참을성 있게 들어줄 수 있는 귀가 열리지 않는 한 
 4월은 정당하게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만년설을 부수며 전투적으로 일깨우는 새벽은
 그 뜨거운 화염으로 근심하는 초목들이 불타고
 우리는 검은 억새풀로 아침식탁을 마련해야 한다
 부러진 정강이를 아연도금하고 지하갱도로 잠적한 동지여
 너의 철 무지개 사상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 비겁한 책상물림을
 우정이란 빌미로 용서하면서 가볍게 웃어넘기지 말기 바란다.
 나는 끝까지 책상 앞에서 버틸 것이다
 제 밥그릇 찾기 바쁜 얼굴들 묽어지는 상처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너의 모병 공고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들 독서량으로 4월은 조금씩 묵상에 잠기고 
 중량감을 이기지 못한 만년설 삐이꺽 신음을 토하며 금을 그을 때 
 우리들 백 명의 늙은 학생들은 새벽 길목에 서서
 일하러 나가는 시민들에게 화법 책을 나누어 줄 것이다

- 이윤택,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 세계사, 1989



 이 시를, 나는 "로티와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의사소통의 문제"라는 학부 졸업논문의 마지막에 내 부실한 결론을 보충해 줄 거라 믿고 넣었었다. 내게는 마르크스주의보다, 부르주아자유민주주의보다, 이윤택의 '제네바'가 더 급진적으로 보였었다. 아니, 마르크스주의와 부르주아자유민주주의의 궁극의 이상이 '제네바'처럼 보였다.
 이제 사회는 점점 풍요롭고 그만큼 천박해져 간다. 도시를 가득 메운 네온사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죽을듯이 피곤하다. 요즘 나는 '긴장성 두통'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병환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할 때도 피곤해 죽겠다. 그리고 이윤택이나 장정일의 시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아마 갑갑해서 그런가 보다. 이성복이 쓴 시구처럼 "무언가, 무언가 안되고 있다". "우리들", "늙은 학생들"은 "새벽 길목에 서서/일하러 나가는 시민들에게 화법 책을 나누어 줄" 각오라도 되어 있는 걸까?
 '사회적 희망'이라는 말이 자꾸만 낯설어져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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