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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emory of K(1966.2.16~2008.6.9.)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왜 유가 아니라 무인가? 어머니 전 혼자예요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공중을 떠도는 비눗방울처럼 무섭고 고독해요 나는 곧 터져버려 우주 곳곳에 흩어지겠지요 아무도 제 소멸을 슬퍼하지 않아요 어머니 전 혼자예요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고요히 솟아오르는 말불버섯 홀씨처럼 어둡고 축축해요 나는 곧 지구 부피의 여덟 배로 자랄 거예요 아무도 이 거대한 가벼움을 우려하지 않아요 여기에는 좁쌀알만 한 빛도 쓰레기 같은 정신도 없어요 혼자 생각했어요 연기(緣起)가 없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우연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단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타이가의 호수에서 보았지요 안녕하세요? (하고) 긴 꼬리를 그으며 북반구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안녕?..
충혈된 눈 - 이상섭 선생의 "영미비평사"는 이상하게도, 쉬운 단어와 단순한 문장 구성인데도 주의집중이 안 되고 난삽한 느낌을 준다. 군데군데 미주에 영문 원 텍스트를 참조해놓고 있는데, 거기에 산재한 오탈자도 신빙성을 감하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오후에 좀 늦게 나가기는 했으나 하루종일 연구실에서 이 책을 읽으며 화가 난 어제. 컨디션 때문인가. 오후에 연구실에 들렀던 ㅊㅁ 형도 '머리에 진한 구름 한 조각이 들어 있다'더니, 날씨 때문이었을까. 글자들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단어들은 낱낱이 흩어져 문장이 되지 않는다. - 만일 도덕과 행복 중 하나를 필연적으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 고봉준의 '감동의 문학'과 '영감의 문학'이라는 이분법은 일견 일리가 있으나, 이 '감동'은 보편적/긍정적 의미에서..
지금 서울에는 비가-to mistymay 지난 포스트에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o come, o come, Emmanuel"을 걸어 두었는데, 올리자마자 저작권 침해가 의심된다며 티스토리에서 위협적인 경고문을 달아놓았어. 나에게밖에는 들리지 않아. 나에게밖에는 들리지 않아. 어쨌든 나에게는 정말로 들려. 이걸 두 번 강조하는 순간 나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주장한 아홉시 뉴스데스크 난동자의 위치에 서게 되겠지만, 이 들리지 않는 음악을 아무와도 나눌 수 없구나. 한때는 아무와도 나눌 수 없으니까 그 황홀경만은 내 것이라고 환호한 적도 있었지. mistymay, 어차피 좋아하는 음악을 똑같이 좋아할 순 없는 거라고 18년쯤 전에 너는 말했었지만, 네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게 새로 열린 세계를 구성하고 있..
어딘가 수상쩍은 오리너구리의 신앙생활 성공회 주교좌 대성당 지하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지하성전이라고는 해도, 나즈막한 비탈의 아랫부분이라 역시 지상이긴 하다. 7년 만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성당에는 아는 신부님들이 한 분도 없다. 울산 성당에서 내게 신명을 주시고 이 성당 성십자가 수녀원에 계시던 애그니스 수녀님도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아직 겨울, 하느님은 추운 돌집에서 주무신다. 여기서는 가끔 "곧 오소서 임마누엘" 같은 12세기의 노래를 부르는데, 어릴 적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아직 오지 않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이집트 식민지 이스라엘의 정서를 반영한다. 예수는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 걸까. 죽고 살아나 돌아간 예수를 또 기다린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희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전 건물은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한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자크 알렝 밀레 (새물결, 2008년) 상세보기 주체 그 자체는 언어의 효과에 의해 분열되어 있으므로 불확실성 속에 있습니다...주체는 타자의 장에 종속된 상태로만 주체일 수 있다는 것, 주체는 이 타자의 장에 공시적으로 종속됨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는 바로 그곳을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빠져나옴'을 통해 그는 결국 실재적인 타자도 자신과 똑같이 거기서 빠져나와야 함을, 거기서 헤쳐나와야 함을 알게 될 겁니다. 바로 이로부터 선의에 대한 필요성이 불가피해집니다. 타자도 주체처럼 욕망의 경로에 대해 곤란을 겪고 있다는 확실성에 기초한 선의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란 곧..
이해와 오해 꼬마 한스와 도라(프로이트 전집 8)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지그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2004년) 상세보기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늦으막히 나와 한산한 문과대 독서실에서 "도라의 히스테리 분석"을 마저 읽었다. 프로이트의 서술을 통해 보건대, 그는 도라가 자신을 처음에는 아버지로, 이후에는 K씨로 전이시켜 생각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전이에 관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라 지적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텍스트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 프로이트가 도라에게서 느낀 기묘한 사적 호감이야말로 이같은 '전이에 대한 강조'의 배면에 드리워져 있는 커튼이라는 느낌이 든다. 도라는 프로이트의 꿈을 대신 꾸고 있다는 느낌, 혹은 프로이트는 도라를 빌..
'당신'과 '그들' 사이에서 비명을 찾아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1987년) 상세보기 10여 년만에, 아이들에게 과제로 내주면서 다시 읽었던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그동안 나뿐 아니라 사회적 서정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했다. SF 소설의 형식을 빌려 보여주는, 민족적 울분에 휩싸인 40대 직장인 남성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이에 대한 주인공 히데요의 관점과 반응이 극도로 상투적이고 전혀 신선하지 않은 것이, 복거일이 세계시민주의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토록 상투적인 민족 감정의 왜곡된 형태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따위의 책을 펴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놀랍(지 않)게도,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이것을 과거와의..
기계 속에서의 명상-어제의 일기 MRI/MRA 검사는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검사였는데, 느낌은 20여 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소음이 크다면서 의사는 귀마개용 헤드폰을 씌워주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세심한 건지, 기계의 작동 때문인지, 몸이 닿는 부분이 따뜻했다. 여러 종류의 소음이 일정 시간 동안 반복되었다. 대개 높고 낮은 한 종류의 소음(점점 음이 높아지는)과, '웅웅' 하는 소리와 '찌르르' 하는 소리가 함께 울리는 듀엣 소음, 심지어 이것에 다른 한 가지 소리가 합쳐져 트리오로 울리는 소음도 있었는데, 기계 안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았던 나는, 소음이 바뀔 때마다 그 충격을 되도록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일정한 시간 동안 반복되는 소리들을 '감상'하기까지 하였다. 그것들은 외계인이 몰고 온 UFO가 공중에 멈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