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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충혈된 눈


- 이상섭 선생의 "영미비평사"는 이상하게도, 쉬운 단어와 단순한 문장 구성인데도 주의집중이 안 되고 난삽한 느낌을 준다. 군데군데 미주에 영문 원 텍스트를 참조해놓고 있는데, 거기에 산재한 오탈자도 신빙성을 감하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오후에 좀 늦게 나가기는 했으나 하루종일 연구실에서 이 책을 읽으며 화가 난 어제. 컨디션 때문인가. 오후에 연구실에 들렀던 ㅊㅁ 형도 '머리에 진한 구름 한 조각이 들어 있다'더니, 날씨 때문이었을까. 글자들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단어들은 낱낱이 흩어져 문장이 되지 않는다.

- 만일 도덕과 행복 중 하나를 필연적으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 고봉준의 '감동의 문학'과 '영감의 문학'이라는 이분법은 일견 일리가 있으나, 이 '감동'은 보편적/긍정적 의미에서의 감동과는 다른 어휘로 대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논지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감동'은 '통속적 휴머니즘' 같은, 보다 구체적인 어휘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우리에게는 '진정한 감동'이 결핍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 근대문학이 망했다고? 아니, 망한 것은 썩어빠진 근대 자체다.

- 최근 들어 서평(+세미나) 때문에 시를 너무 많이 읽고 있는 게 죄라면 죄다. 이제 시가 시로 안 읽힌다. 물론 최근의 시가 별로 시적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시적인 것'에 매달려 있는 최근 평단의 기획들은 실은 이 '시적인 것의 부재'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새로운 시적인 것'을 밝히려고, 그러니까 최근의 '비시적인 시'가 굳이 '시적'이라 증명하려고 평론가들은 충혈된 눈으로 현대철학 텍스트들을 뒤지지만, 도대체가 '보편적 감성'의 존재를 부인해야만 성립되는 그러한 증명들은, 정당성을 어디에서 보증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느 누구도 '참'을 보증해줄 수 없다는 것. 그게 우리들 모두의 궁극의 궁지다.

- 가엾은 짐승들아. 늬들 영혼은 이미 고사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