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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자살과 서거, 혹은 과연 부엉이는 쥐의 포식자인가?-양심도 라디오처럼 끄고 켤 수 있다면



하얀 부엉이

누굴까?
하얀 부엉이가
우리에게 묻고 있어.
누굴까?
이건 부엉이가 낸 수수께끼야.
하얀 세상에
하얀 깃을 가진 건 누굴까?
하얀 얼음 위로 나는 건 누굴까?
누굴까?
또, 하얀 눈 위로 나는 건 누굴까?
하얀 바람이 불 때 훨훨 나는 건 누굴까?
- "노란 코끼리" 중에서



하여간 그날 저녁 수위는 헛소리를 해댔고 열이 40도나 오르는 가운데 쥐를 원망하고 있었다..."아! 이 망할 것들 때문에!"
...
"쥐들!" 하고 그는 내뱉었다.
...
"이제 그럼 가망이 없는 건가요, 선생님?"
"죽었습니다." 하고 리유가 말했다.
...
공포가, 그리고 공포와 함께 반성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 카뮈, "페스트"


어제 아침 노무현이 자살했다. 뉴스에서는 한사코 서거했다고 한다. 작년 초에 남대문이 불에 탔을 때 한사코 숭례문이라 했던 것처럼. ‘자살이라는 말이 상기시킬 그 무슨 불온한 맥락들이 불안하다는 듯이. 고시 준비 시절 머리 아플 때마다 올랐다는, 이름도 외로운 부엉이 바위위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찾았던 것은 담배 한 개피. 군대 끌고 와 대통령 되고 수천 명 죽이고 밝혀진 것만 6천 억 받아먹고 통장에 25만원 밖에 없다던 뻔뻔한 새끼는 얼굴이 허여멀건 하니 살만 피둥피둥 찌고 있는데. 마누라 주걱턱 수술은 무슨 돈으로 했나? 젠장. 심장에 비계 끼고 얼굴 두꺼운 놈들은 좋겠다. 양심도 라디오처럼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를 패러디한 장정일 풍으로. "겨울에 걸인 하나가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던 황구라 소설가 선생님 가슴이 뜨끔하셨겠군. (직접적으론 아무 상관 없지만 간접적으론 모두 상관 있다. 오, 그 자신의 말이 이런 식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올 줄이야!) 양심이 라디오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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