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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지금 서울에는 비가-to mistymay



지난 포스트에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o come, o come, Emmanuel"을 걸어 두었는데, 올리자마자 저작권 침해가 의심된다며 티스토리에서 위협적인 경고문을 달아놓았어. 나에게밖에는 들리지 않아.

나에게밖에는 들리지 않아. 어쨌든 나에게는 정말로 들려. 이걸 두 번 강조하는 순간 나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주장한 아홉시 뉴스데스크 난동자의 위치에 서게 되겠지만, 이 들리지 않는 음악을 아무와도 나눌 수 없구나.

한때는 아무와도 나눌 수 없으니까 그 황홀경만은 내 것이라고 환호한 적도 있었지.

mistymay, 어차피 좋아하는 음악을 똑같이 좋아할 순 없는 거라고 18년쯤 전에 너는 말했었지만, 네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게 새로 열린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던 너의 이름과 목소리와 너다움을 사랑하기로 했었던 것이라는 걸, 너보다 먼저, 나보다 먼저, 우리의 영혼은 알고 있었겠지. 

이건 어쩐지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보내는 원격 연애편지같이 되고 말았구나.

나의 수도생활은 그다지 경건한 것은 못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나를 용서하고 있고("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 같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나에게만 들리는 먼 추억의 재잘거림과 갑작스런 예언적인 꿈속의 한 마디들과 우리의 더듬이를 간혹 빛내는 우리 백일몽 속에서의 그리운 호명을 

컴퓨터에도 MP3 플레이어에도 저장할 수 없는 아무에게도 증명할 수 없는 그 소리의 색채들을

바래지 않는 우리 영혼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나는 응시하고 있어. 그것들이 단지 과거가 아니라 나를 구석구석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고 곧 도래할 현재들의 총체가 바로 나라는 것을, 이 작은 공동체를

거기에 너의 향기가 배어있다는 것을.

지금, 서울에는, 천 개의 말줄임표 같은 비가

명상보다 기도보다 명백한 색채의 비가

네 이름의 철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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