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주교좌 대성당 지하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지하성전이라고는 해도, 나즈막한 비탈의 아랫부분이라 역시 지상이긴 하다.
7년 만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성당에는 아는 신부님들이 한 분도 없다.
울산 성당에서 내게 신명을 주시고 이 성당 성십자가 수녀원에 계시던 애그니스 수녀님도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아직 겨울, 하느님은 추운 돌집에서 주무신다.
여기서는 가끔 "곧 오소서 임마누엘" 같은 12세기의 노래를 부르는데, 어릴 적 무척 좋아했던 노래다.
아직 오지 않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이집트 식민지 이스라엘의 정서를 반영한다.
예수는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 걸까.
죽고 살아나 돌아간 예수를 또 기다린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희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전 건물은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한다.
지상에 낮게 깔려 포복하는 듯한 건물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봄이면 라일락이 핀다.
아홉 살 봄 어느 일요일에 아빠는 낮잠 자기를 그만두고 성당의 라일락 군락 앞에 나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는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그때를 파라다이스처럼 기억한다.
아일랜드계의 게이인 한 친구는 "한국인 주제에 영국국교회에 다닌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세계에서 게이를 받아주는 교회는 여기가 유일하다.
우리가 머릿속에 할아버지로 형상화하는 하느님은 말이지, 실은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어른도 아니라구.
그분은 싸파이어 왕자처럼 남장여자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하느님 어머니"라고 불러도 그분은 개의치 않으실 거야.
아무려나, 모르는 사람들과 "평안하세요"라고 안부를 나눌 때, 우리는 약간 착한 사람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