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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문과대 독서실 옆문으로 나가 담배를 태우고 있으려니 교복 입은 신입생들이 모여들어 불량 고등학생처럼 침을 찍찍 뱉어가며 담배를 빤다.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온 예비군처럼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은 대번 자기가 '고딩'일 적에 얼마나 불량했던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물론 거개가 뻥이다. 그들의 무용담처럼 '야생마'로 살았더라면 여기서 이렇게 날라리인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 학교의 교복들은 '쌔삥'처럼 날을 잘 세웠고 머리는 염색을 했거나 펑키하다. 여학생들은 스커트를 급히 줄여 입은 티가 난다. 남학생들은 모델처럼 날렵해 보이려 가슴을 펴고 연신 어깨를 털고 있다. 아무리 날라리인 척해도 어딘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보여야 한다. '진짜 날라리 고딩'의 생짜의 감정 같은 것이 있을 리가, 물론 없..
거듭 도착하는 편지 Your Horoscope for MARCH 06, 2008 A loved one might be away on a short journey of some kind, Orintorinco, leaving you feeling lonely and a bit down in the dumps. The only way to get around this kind of gloom is to keep yourself busy. Read, or visit a neighbor. If you've been thinking of trying your hand at writing this is the day to give it a try. Keep your mind busy and you'll find that your fr..
수도사와 짐승 사이 適度를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 들끓는 욕망과 무기력 사이에서, 그러나 '그럭저럭 어중간하게' 사는 것이 아니면서 적도에 부합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것, 거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 자신의 모든 행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ㅊㅁ형이 미얀마 스님에게서 얻은 깨달음도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는 우리들'에 대한 일침과 다르지 않았겠지; 그는 매일 아침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 갔지만, 스님은 이런 질문들을 던졌을 따름이었다. "자네는 오늘 아침 방문을 나설 때 문고리를 오른손으로 잡았는가, 왼손으로 잡았는가?" 말하자면, 우리가 '무의식적 행위'라 지칭하는 것을 최대한 의식의 층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동시에 우리의 무의식적 행위들이 실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면서 ..
숭례문과 남대문 숭례문 화재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경각심과 동시에 모방 범죄들을 불러온 듯싶다. 그것은 TV를 통해 방영되는 충격적인 화면의 아찔한 (초)현실감이 어쩔 수 없이 불러들이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소문, 소문의 무시간적 확산은 즉각적인 (초)현실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개인의 규율과, 규율을 무시하고 무질서로 나아가고자 하는 가없는 욕망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다. 숭례문의 '추모자들'은 '물리적으로 체화된 역사'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 아니라 마치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 사람들처럼 공포와 연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에 대한 테러였던가? 그것은 테러였던가? 테러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국가적 자존심'에 대한 위협으로 정의되었다. SBS 8시..
1999년 그해 여름, 대기에는 물기가 가득했으며, 나는 조증 상태로 살짝 맛이 가 있었다. 와 트라이포트 페스티벌로 상사병을 달래다. OST 중 백미는 마돈나의 "Beautiful Stranger".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아내가 되고 싶어진다. 마돈나의 섹스어필은 성별을 초월하나보다.
동지에게 화답함 죽은 예언자의 거리 무엇이라 말할까 만남이라는 기막힌 우연과 그 섬뜩함에 대하여 마주치자마자 내 골수에 자기의 촉수를 담그는 얼굴들과 그 배경에 관하여 그 가지각색의 각개격파를 차별 없이 기적이라 부르는 순진한 이상주의에 대하여 그 상처 없는 잔혹한 천진난만에 대하여 어느날 두 사람이 만나 한 사람을 낳고 모두 사라지는 말할 수 없이 폭력적인 생리 어느날 두 사람이 만나 한 사람을 죽이고 손을 씻는 말할 수 없이 공공연한 심리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 세계가 비로소 시작되리라던 말할 수 없이 아스라한 예언) 이 거리의 이정표는 이제 아는 것들만 알려준다 이미 와 있는 것들의 끔찍한 소용돌이 (열린시학, 2007, 봄)
서태지 15주년 유감 우리 세대는 서태지를 빼고는 10대를 기억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그때 한창 메탈리카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서태지를 성실하게 듣는 팬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반항적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 음악적 메시지는 지나치게 건전했달까. (하긴 메탈리카도 'One' 같은 反戰 대곡을 발표하고 있었지만) ‘발해를 꿈꾸며’ 같은 것은 (특히 비둘기 CG가 엄청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끔찍했고 ‘Come Back Home'은 좋아했지만, 이 곡을 듣고 집에 돌아온 가출 청소년 뉴스를 보고 나자 미디어가 서태지를 자기들 식으로 좋아하고 있으며 서태지가 머지않아 미디어의 그러한 음험한 의도의 망 속으로 무력하게 편입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문화 대통령’ 운운하는 그에 대한 신화화도 못마땅했다. 그러니까, ..
정동, 그리고 多衆의 도덕 * ‘카우치-마우스 포테이토’의 피로 여기에 일을 마치고 온 한 사람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케이블 TV를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피곤하고 온통 나른한 느낌에 사로잡혀 자신의 노동에 지친 심신을 환기시키기 위해 채널을 돌리고 있다. 온갖 종류의 채널들이 그/녀의 눈을 스쳐 지나가다가 마침내 그럴 듯한 영화 한 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속에는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 차 있다. 정신의 한 부분은 자신의 노동에,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환기에의 요구로 몹시 피로하다. 그러나 그/녀는 리모트콘트롤러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여기에서 리모트콘트롤러는 더 이상 TV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그/녀를 통제한다.) 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