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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서태지 15주년 유감

 
우리 세대는 서태지를 빼고는 10대를 기억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그때 한창 메탈리카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서태지를 성실하게 듣는 팬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반항적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 음악적 메시지는 지나치게 건전했달까. (하긴 메탈리카도 'One' 같은 反戰 대곡을 발표하고 있었지만)  ‘발해를 꿈꾸며’ 같은 것은 (특히 비둘기 CG가 엄청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끔찍했고 ‘Come Back Home'은 좋아했지만, 이 곡을 듣고 집에 돌아온 가출 청소년 뉴스를 보고 나자 미디어가 서태지를 자기들 식으로 좋아하고 있으며 서태지가 머지않아 미디어의 그러한 음험한 의도의 망 속으로 무력하게 편입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문화 대통령’ 운운하는 그에 대한 신화화도 못마땅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아이러닉하게도, 그의 돌연한 은퇴가 그의 진정성을 증명했다는 안도감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정황들을 떠나 음악만 놓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면, 서태지가 미국 최신 유행 장르들만 골라 들여오는 보따리 장수라 할 수도 있지만, 늘 그저 그런 댄스음악과 천편일률적인 발라드만 듣고 사는 것보단 훌륭한 물건들을 훌륭하게 튜닝해서 들여오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서태지 음악을 듣고 있으면 별 감동이 없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꾸준히 너무 희망적이어서 때로 보수적이기까지 한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앨범에 포함시키곤 했는데, 특히 가장 최근 앨범인 7집에서 미국에서 90년대 중후반에 무척 유행했던, ‘어딘가 스쿨밴드 같은 느낌의, 메이저 코드들이 난무하는 음악’들을 꽤 포함하고 있다. 사운드는 꽉 차 있는데 멜로디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내가 ‘전지구적인 미국적 문화질서’에 이미 길들어버린 걸까.

이 노래 역시 메시지가 건전하다 못해 공익 광고 같은 데가 있다. 같은 음악 장르를 가지고 림프 비즈킷이 fuck을 수 십 번 반복하며 온통 반항과 자율을 외치는 반면, 서태지의 '청소년들이여 집으로 돌아가라' 같은 전언은 혁명적 몸짓으로 가장 공고한 가족주의를 옹호한다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끝에서'나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같은 가사는 괜찮다. 6집에서까지 재녹음을 한 걸 보면 본인도 꽤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

자동차 광고에 등장하는 서태지를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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