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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Read Mr. Sacher-Masoch

썅. 진짜 너무 덥다. 

동양도서관이 쉬는 월요일이어서 가끔 오던 서운작은도서관에 왔는데, 이 도서관에서 매일 밥 얻어먹는 노랑 고양이도 너무 더워서 도서관 현관 층계참 그늘에서 늘어진 채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다. 

진즉에 끝냈어야 할 들뢰즈 원고가 시원하게 나오질 않고 찔끔찔금 염소똥처럼 떠듬떠듬 씌어지고 있어서 논문 후유증으로 '고장난 글 센서'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동시에, 그럼 일주일 후에 마감인 학술대회 발표문은? 머리가 띵하다. 

그러나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David Sigler라는 사람이 쓴 논문 하나를 읽었는데, 굉장했다. <"자허-마조흐를 읽어라": 자크 라캉과 질 들뢰즈의 철학 속 마조히즘의 문학성("Read Mr. Sacher-Masoch": the literariness of masochism in the philosophy of Jacques Lacan and Gilles Deleuze)>이라는 글인데, 들뢰즈의 마조히즘에 대한 글들이 대개 프로이트의 사도-마조히즘과의 구별점(이미 들뢰즈 그 자신이 충분히 논하고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을 보여주는 데에 치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글은 문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그리고 정신분석학적으로도 풍부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가령, 라캉과 들뢰즈 사이의 상호 영향 관계라든지, 데리다로부터의 영감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실증적이고 설득력 있다. 그가 이 개념으로 하여금 인류의 공공재이면서 동시에 도착증의 기원으로 자리 매김시키는 전후 맥락을 살피는 것은 진짜 손이 좋은 재단사가 군더더기 없이 쫙 뽑아놓은 수트 한 벌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것처럼 흐뭇하다. 이 논문을 기념하기 위해 결론 부분을 번역하여 옮겨놓는다; 

이런 식으로 마조히즘을 이해하는 것은 도착증을 언어의, 그리고 서사의 개별적이고도 흔치 않은 측면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발상의 발견자들, 라캉과 들뢰즈는 마조히즘에 대한 현대 연구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마조히즘은, 이제, 특정한 개인 주체(가령, 변태)나 증상(가령, 고통이나 모욕)이나 단어/이미지(가령, "냉정함")와 같은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조히즘은 19세기 임상 담론의 효과인, 단순히 비규범적인 성적 정체성의 유형을 위한 이름이 아니다; 덧붙이자면, 라캉에게 마조히즘은 정상적인 동시에 비정상적이었다--이것은 규범적인 술어를 아무런 뜻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마조히즘은, 오히려, 서사 안에서 불안정적 장해를 만들어내는 언어와의 도착적인 제휴이다. 그렇다면, 라캉과 들뢰즈가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통해 마조히즘에 다다른다는 사실, 그 대가로, 문학적인 것에 대한 그것 자체의 조사를 통해 초감각주의에 도달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도착증의 문학성에 입문하기를 배울 때에, 마조히즘은 그것이 각자 제자리에 고정시킨 주체들을 서사를 통해 재구성하는, 세심하게 편곡된(orchestrated) 욕망의 그물망이 된다. 보아하니, 이런 재구성 자체가 문학적인 읽기 행위를 통해, 그리고 그것에 의해 성취되는가 보다. 라캉이 제안하고 들뢰즈가 자주 재연하는 방식대로 "자허-마조흐를 읽기"를 배움으로써, 마조히즘 연구는 마침내 자아 심리학의 익숙한 지형학을 뛰어넘고, 외형적으로는 정신분석에 너무나 근본적인, 욕망하는 주체라는 바로 그 개념을 풀어놓을(undo) 수 있다. 

Sigler, David. "" Read Mr. Sacher-Masoch": The Literariness of Masochism in the Philosophy of Jacques Lacan and Giles Deleuze." Criticism 53.2 (2011): 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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