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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기분의 유량통제시스템

우리들의 진화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이근화 (문학과지성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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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전거를 못 타는 기분도 있다

송곳니가 반짝이는 이상한 기분은

송곳니로 찌르는 이상한 기분으로 위로할 수 있지

-「송곳니」 2연

 

우리의 사회화된 감정은 대개 무엇에 울고 웃고 화내야 할지 상당 부분 교육된 결과다. 공생활 내에서 우리는 대충 어디서 어디까지가 우울이며 불안이며 공포며 명랑인지 비교적 선명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그 안에서 울고 웃고 떨고 소리 지른다.

<우리들의 진화>는 이 스펙트럼의 선명성 안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수렴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들에 시인은 사로잡힌다. 이름이 없으나 실재하는 ‘이상한 기분들’, 기분은 감정의 조짐처럼 다가온다. 12음계나 색상표를 들이대어보아도 이 이상한 기분에 딱 맞는 소리나 색깔의 이름을 댈 수 없다. 그래서 이 기분들은 맛이나 냄새와 더 친연성을 갖는다. 「꿀이라 생각되는 맛」이나 「새우의 맛」처럼 맛 자체를 표제로 한 시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미묘한 맛과 냄새는 시집에 범람하고 있다. “비의 냄새”(「소울 메이트」), “황금빛 먼지의 냄새”(「고양이 불필요」), ‘물고기의 냄새’(「오늘은」), 혹은 “물방울 맛”(「원피스」), “꿀의 맛”, 또는 “꿀이라고 생각되는 맛”(「꿀이라고 생각되는 맛」), “새우의 맛”(「새우의 맛」)을 ‘비린내’나 ‘단맛’, ‘고소한 맛’으로 부르는 것은 모욕적인 짓거리이리라. ‘꿀맛’마저 관용적인 사용으로 오염되었다. 고정된 맛의 이름은 심히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