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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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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에 대한 중단 없는 사랑을 위하여 나는 오랫동안 하이데거와 첼란을 둘러싼 몇 개의 장면들을 하나의 유비로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내가 이 일화들에 흥미를 느낀 것은 제도적 절차를 통해 ‘시인’이나 ‘평론가’가 되기 전이었다. 그때 나는 하이데거와 첼란을, 시를 사랑하는 사람과 시를 쓰는 사람,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과 아름다운 사람, 이를테면 나보코프의 험버트 험버트와 롤리타, 혹은 토마스 만의 구스타프 아셴바흐와 폴란드 소년의 관계와 같이 생각했다. 롤리타는, 폴란드 소년은, 험버트와 아셴바흐를 얼마나 절망에 빠뜨렸나! 하이데거는 횔덜린과 릴케와 첼란을 읽을 때마다 자신이 시인이 아니라는 사실, 단지 시를 사랑할 뿐이라는 확인에 얼마나 비참했나! 얼마나 시인이 되고 싶었나! 시가 ‘명명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철학사 전체를 자신..
유토피아에서 아나키로 기획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시인에게 시 쓰기 자체가 실천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개성이 다양한 만큼 실천의 모습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특집에서 이 다양한 시 쓰기로서의 실천이 시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왜 그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지를 여러 평론가와 시인의 시각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기획의도에 대한 나의 해석이 이 글의 성격을 규정지을 것이었다. 1. ‘실천’은 무슨 뜻인가? 2. 1.의 의미와 관련하여 ‘다양한 시 쓰기로서의 실천’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2의 ‘다양한 시 쓰기로서의 실천’이 성립 가능한 구문이라면, 그것이 ‘시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가능한가? ‘왜 그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지’라는 의문은 타당한..
시와/의 죽음-미지수 X의 부재증명, 가눌 수 없는 체념의 층위 철학의 고백 총알이 빗발치던 1차 세계대전의 참호 안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써내려간 노트는 1921년, 자신의 유일한 생전 출판물로 완성된다. 그가 뽑아낸 군더더기 없는 철학적 명제들은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천착의 결과물로, 이는 언어적 전회라 불릴 만큼 정통철학의 문제를 언어의 문제로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었다. 그 일단은 다음과 같이 명제화된다.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묘사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좌우간 생각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명료하게 생각될 수 있다. 언표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명료하게 언표될 수 있다.” 이런 ‘말에 대한 믿음’은 근대 이전의 철학사 전체가 증명하고 있는바, 모든 철학은 말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언제나 공상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