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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소설가 곰치 씨의 분신(들)


소설을 쓰자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언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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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쯤 전 김수영은 죽기 전에 쓴 그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며,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그는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선, 막상 시의 형식-예술성/내용-현실성 논의에 들어서자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고 쓴다.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것’에 부연하듯 덧붙인 말은 이것이다. “그만큼 많은 산문을 도입하고 있고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유가 없다.” 소설을 쓰듯 시를 쓴다는 말은 내용-현실성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알다시피, 그의 시론의 주제인 ‘온몸’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지 않은 이 둘 사이의 긴장 자체이므로, 소설을 쓰듯 쓰는 시가 ‘시’를 쓰듯 쓰는 시의 내용/형식과 일치할 리 없다. 그것은 극단의 긴장과 배반의 반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서두를 김수영으로 시작한 것은 김언이 첫 시집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러한 의미로서의 ‘소설쓰기’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수영을 생각함」에서 김수영에 대한 심리적 태도의 밀착감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하지만) 김언은 김수영의 시와 시론이 예기치 않게 멈출 수밖에 없었던 지점에서 자기 식으로 ‘온몸’을 완수하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더 많은 자유를 위하여 더 많은 산문성을 도입하되,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한다는 김수영 식 ‘소설 쓰듯 시 쓰기’의 김언 식 발전 계획을 통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