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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review

고영, 오은 서평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고영 (문학세계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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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他者)이며 타자(打者)인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중년 남자의 비애란, 그의 삶이 가족과 사회에 바쳐지고, 그 헌신을 위해 자기 자신의 사감(私感)들을 오롯이 감당하고, 평생의 노동이 그를 외면한 채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리라는 (확실한) 예감과 떨어뜨려 생각하기 힘들다. (「은자(隱者)」에서 그가 쓰고 있듯, 죽어서 비로소 은닉될 수 있었던 익명적 주체에게, 죽음과 대응항인 삶은 “자해의 흔적인지, 타살의 단서인지 도저히 밝힐 수가 없는” 노동의 흔적으로 치환된다.) 사랑이 많은 남자에게 이 비애는 유독 깊다. 사랑은 모든 국지적인 문제를 전면적인 번민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영의 이번 시집에서 일상의 국면들이 깨달음으로 수렴되는 것은 이 사랑의 보편적 성격 때문이리라. 참으로, 서정적 화자의 진정한 번민은 사랑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닌가.

 

 

호텔 타셀의 돼지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오은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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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히 몰래 노는 불온한 어린이의 불안
 

오은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을 읽는 독자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그의 현란한 말놀이일 것이다. 그의 말놀이 자체가 골머리를 앓으며 수행되는 것이 아니므로, ‘연구’한 뒤에 읽는 오은 시의 재미는 반감되리라. 또, 이 말놀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 묻는 것도 시기상조이거나 무의미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과연 있다면, 그것은 놀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인으로 하여금 말로 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하는 심리적 강제는 분명히 있다. 말놀이와는 별도로, 아니 그 말놀이를 통해서 그가 순간순간 의도한 그림의 마무리는 종종 어딘가 불충분한데, 이 불충분함은 자신의 시에서 펼쳐 보이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시인의 감정의 방향이 아직 미결정 상태에 있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는 그의 끝없는 말놀이의 배후에 그것을 추동하는 ‘체념 직전의 불안’ 같은 것이 있다고 느낀다. 1차적인 단서를 시인은 시집의 「자서(自序)」에 살짝 던져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