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글/review

삶=똥, 몰수당한 청춘의 알리바이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박후기 (창비, 2009년)
상세보기

박후기는 삶이 일종의 ‘덤’이나 짐이라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에서 배설물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이 생산의 지점과 동일한 장소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그 징후일 것이다. 「채송화」에서 “무너진 집안의 막내인 나는/가난한 어머니가/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이 세상에 없는 아이/.../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엄마는 아무 때나/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오줌을 누었다/죽은 동생들이/노란 오줌과 함께/쏟아져나왔다”라고 쓸 때 태어나지 않을 뻔 한 시적 화자의 느낌은 ‘죽은 동생들’과의 동일시 직전까지 가고, 「꽃 진 자리」에서는 “사과에겐/꽃 진 자리가 똥구멍이다/꽃 진 자리에 유난히/주름이 많은 것은/전생(全生)이 한꺼번에 쏟아질까봐/항문에 힘주기 때문이다//사과밭 노인 병상,/어머니 관장하신다”고 쓸 때, 사과의 탐스러움은 해체 직전의 안간힘으로 이행한다. 또 「소금 한 포대」에서 간수가 흘러내리는 소금 포대와 “누런 오줌 가라이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치매 걸린 노모”를 병치할 때에도, “산의 똥구멍 같은,/아는 사람만 슬쩍/숲의 괄약근/두 손으로 벌리며/빠져나오는 등산로”(「막잔」)라고 쓸 때에도, 항문과 요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인생이다. 왜 그는 ‘삶=똥’이라는 그물에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

'지난 글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가 곰치 씨의 분신(들)  (0) 2009.11.10
기분의 유량통제시스템  (0) 2009.11.03
고영, 오은 서평  (0) 2009.11.03
유명한 영희에게서 투명한 앨리스에게로  (0) 2009.11.03
공기와 총  (0) 200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