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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공부와 학점 사이

picture from <The Washington Post> "Study Test Score Gains Don't Mean Cognitive Gains"

   

강사들의 방학은 성적 처리와 함께 시작된다. 학생들이 모두 골몰하며 보고서를 채우고 나면, 세상에서는 한낱 시급 노동자에 불과한 인문예술학부의 강사들도, 시급과는 무관하게 학생들의 여러 모로 고뇌에 찬 보고서를 마주하면서 인류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채점에 들어간다. 어떤 보고서는 있는 끼를 다 부려 스스로 사유하는 훈련을 상상력과 더불고, 또 어떤 보고서는 가장 모범적인 교과서들을 요약 정리하면서 기본적인 사실에 충실하며, 또 어떤 보고서는 자기 앞에 던져진 여전히 낯선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특정 문제와 마주선 현재의 자기를 투영하고 있으므로, 정답 없는 문학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 선생은 그 보고서의 글쓴이들과 함께 모험하고 갈등하고 또 가끔은 함께 헤매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의 가장 실용적인 측면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요즘은 모두들 쓸모에 골몰하니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제시해놓은 생각의 뭉치들을 제 것인 양 함께 고민하면서 사유와 상상의 실험을 거쳐 인간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하여 사실은 일관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은 모순투성이의 세상사를 달관하거나 버리지 않고 잘 대처해나갈 감수성과 사유의 잔근육을 키워주는 것일 터이다. 돈 많으면 가던 비행기도 돌리는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일지도 모른다는 인문학과 예술의 모호한 이념이 가진 이 쓸모는 결코 작지 않은데, 이것은 끊임없는 수정과 개혁을 통해 자기를 만들어가는 일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자기를 변화해나가도록 독려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적은 기능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을 훈련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공부의 프로퍼갠더가 될까?

 

하지만 슬프게도 지금은 모든 것이 상대평가에 놓이는 때.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저런 공부의 프로퍼갠더를 열심히 경청한 학생이 성실에 찬 B+학점 보고서를 제출하고서는, 왜 자신의 보고서가 A가 아닌가, 나는 몇 등인가 등의 무섭고 슬픈 질문을 던져오는 것이다.

 

모두가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다. 그 동기를 생각하도록 권유하는 것만도 한 학기로 모자란다. ()

 

  <매경춘추> 201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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