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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크리스마스트리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형상화하려고 미메시스 정신에 입각하여 꾸며낸 것. 반짝 반짝 빛나는 것. 수은주는 깊이 내려가도 당신의 체감온도는 아름다움에 의해 상기(上氣)될 수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것저것 매달아 의외의 완성도를 달성하는 것. 너무 무거운 장식물은 떨어뜨리고 마는 것. 진짜와 가짜에 별다른 구별이 없는 것. 어둠 속에서 혼자 깜, , , , 중얼거리는 것.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것. 해체는 조립의 역순. 그러나 조립할 때마다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한파가 찾아온 한밤에 불 다 끄고 거실에 앉아 보고 있으면 술이 당기는 것. 술에 취해 보고 있으면 너무 예쁜 척 해서 넘어뜨리고 싶은 것. 넘어뜨리고 나서 밟고 싶은 것. 그러다 다시 복구해내는 것. 미안해, 미안해, 중얼거리며 매만질 수 있는 것. 가짜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꼬마전구를 다시 두르고 색색의 빛나는 공과 천사와 리본과 크리스털을 본뜬 플라스틱 장식품을 얹으면서, 조립은 해체의 역순이 아니고. 재조립에는 반성이 동반되는 것.

 

머리 꼭대기에는 별을 달고 있는 것. 그 별은 혜성이었을 거라는데. 가다가 시골 마을 마굿간 위에 갑자기 멈춘 걸 보면 미확인 비행 물체였을 수도. 외계인들은 하필 거기에 잠깐 멈추어 있었는데, 근처에서 노숙하던 목동들은 수상한 빛을 따라갔다가 처녀가 아이를 낳은 말똥 냄새 가득한 현장을 목격한다. 아이 엄마의 약혼자는 자기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극기에 찬 윤리 감각의 단련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떠안고 가기로 한다. 목공인 자신의 길을 따라 또 목공의 길을 걸을 아이. 친자 확인을 할 수 없는 아이. 하지만 분명 곧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가 태반을 쏟으며 낳은 아이.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실업자가 될 아이. 실업자일 뿐 아니라 비렁뱅이에 가까운 백수가 될 아이. 자기만 백수가 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백수 집단에 가입시킬 아이. 그리고 이 백수 집단을 이끌고 제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일손을 멈출 아이. 제국의 작동 원리를 근본부터 뒤엎을 아이. 혁명이 꼭 폭력적일 필요는 없다고, 하는 말마다 비유를 선호할 아이. 자기 어휘를 고집할 아이.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매력적인 이야기를 퍼뜨릴 아이.

 

이 사건을 기록한 책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세계를 변혁할 누군가가 태어난다면 동티모르나 부탄의 이름도 모르는 시골 마을의 꺼져가는 오두막에서일 거라고. 어쩌면 신의주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의 백두산 자락 아래 양강도 어디께일 수도.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제국이 명령한 호적 조사를 하러 가던 결혼 직전의 젊은 피식민 커플은 방도 못 잡고 짚더미 위에서 혼전 출산을 감행하고, 민족의 관습법에 따르면 아무튼 이 여자는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축하하고 있는 것. 예뻐서 가끔 잊어버리지만 이것이 기념하는 바는 이토록 참람된 것. 자기의 운명을, 운명론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윤리적인 선택으로 사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그 모든 결과를 지칭하는 것. 모두 해체되었다가 다시 서는 것. 나름의 통일성에 입각하여 구성되는 것. 여러 사람이 만들어도 보기 싫지 않은 것. 여러 사람이 만들었는데 의외로 보기 좋은 것. 매번 되풀이 되는 것. 사는 일이 피곤하고 지겨워질 때쯤 다시 불을 밝히는 것. 만들 때마다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 단번에 쓰러질 수도 있지만, 미안해하며 다시 세울 수도 있는 것.

 

아무 거나 매달아도 되는 것. 열대에서는 바나나나 파파야를 달 수도 있는 것. 그러면서 한 번쯤 눈이 내린다면, 하고 중얼거릴 수 있는 것. 북반구에서는 열대에서 만들 이것을 상상하게 하는 것.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세상 모든 예술 작품들의 신성화된 세속성. 고이 접어서 상자 속에 넣을 수 있는 것. 상자 속에 넣어서 땅에 묻을 수도 있는 것. 한여름 재개발 중에 깜짝이야, 땅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는 것. 내일 아침 당신이 무심코 연 벽장 속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죽은 옛날 애인의 생일 축하 카드처럼.

 

매번 돌아오면서, 매번 놀래키는 것. 돌아올 때마다 점점 추상화되는 것. 추상화되면서 갖가지 이상한 일화들을 만들어내는 것. 누구나 만들고 있는, 세상 모든 예술 작품들의 속화된 신성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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