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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문학과지성사, 2012)


 


가벼운 공간

 


가장 가까운 벼랑과 손

떨어지는 손은 손을 잡고 잡은 손은

다짐의 일부처럼

깊이,

흐른다

나는 거의 오래되었지만

조용히

벽으로 이루어졌다

듣지 못한 소리는 태어나지 않은 부분에 관한 것

내미는 손을 자꾸 삼키며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다는 와 있고

두드린다

두드린다

풍선과 나와 표정과 방

손을 잡고 손을 잡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 내 비밀이 걸려 있고

흙에서 살냄새가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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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금요일 밤인데 외롭지가 않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다

줄넘기를 하러 갈까

바닥으로 떨어진 몸을 다시 띄우는 순간엔 왠지 더 잘생겨지는 것 같다

얼굴은 이만하면 됐지만 어제는 애인이 떠났다

나는 원래 애인이 별로 안 좋았는데 싫은 티는 안 냈다

애인이 없으면 잘못 사는 것 같다

야한 동영상을 다운 받는 동안 시를 쓴다

불경한 마음이 자꾸 앞선다 근데 왜 내가 뭐

그래도 서른 한 살인데

머릿속에선 이렇게 되뇌지만 나는 인정 못 하겠다

열 시도 안 됐는데 야동을 본다

금방 끈다

그래도 서른 한 살인데

침대에 눕는다

잔다 잔다 잔다

책을 읽다가 다시 모니터 앞으로 온다

그래도 시인인데

애인이랑 통화하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애인이랑 모텔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야동 보느라 회사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만두 먹어라 어른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행히 오늘은 바지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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