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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슬픈열대(한길그레이트북스031)
카테고리 인문 > 인문교양문고 > 한길그레이트북스
지은이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한길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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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았던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낸 서양문명 최대의 고명한 작품인 원자로의 경우처럼, 서구의 질서와 조화는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막대한 양의 해로운 부산물의 제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 (...) 인류는 이제 단일재배를 개시하려 하고 있다. 인류는 마치 사탕무를 재배해내듯 문명을 대량생산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인류의 식탁에는 오직 그 요리뿐이리라." (140)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 이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망각은 나의 추억들을 그 흐름 속에 넣고 굴림으로써, 그것들을 단순히 마멸시켜 묻어버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내 추억의 단편들을 가지고 망각이 쌓아놓은 깊은 체계는, 내 발걸음이 보다 견고한 평형을 유지하도록 해주며, 또 나의 시야에다 보다 밝은 계획을 제시해주었다. 하나의 질서가 다른 질서와 대체된 것이다. (...) 생각지도 않았던 일인데, 시간은 인생과 나 사이에다 지협(地峽)을 길게 끌어다놓았다. 그 옛날의 경험과 마주보게 되기까지는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날 나는 의미도 모르는 채 지구 끝까지 그 경험을 추구하러 넋을 잃고 다녔던 것이다." (149-50)

"나는 어떤 상황에 담긴 진실이 나날의 관찰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분류를 통한 증류 속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증류는 향기와 관련된 연상이 우연한 말장난의 형태를 띠고, 당시 내가 명확히 표현할 수 없었던 상징적 교훈의 매개체로서, 나에게 실행에 옮기도록 전했던 것이었다. 탐험이라는 것은 널리 걸어다니면서 구경을 한다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지점을 발굴하는 것이다. 우연히 빼놓고 보지 못한 어떤 경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장면, 비행중에 생각한 일--이런 것들만이 거친 원시적 상태 그대로의 견문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154-55)

"때로는 은둔, 때로는 사명일 수 있다는 게 바로 교육과 연구의 영광이요, 또한 오욕이다." (167)

"추억은 인생 그 자체에기는 하나, 다른 성질을 지닌 것이다. 그러기에 짧은 환각 속에서, 사람들이 불투명한 힘인 안개와 번개--하루 종일 마음속에서 막연하게 그 모호한 갈등을 파악하였던--가 드러남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태양이 천국에 사는 어느 수전노의 작은 동전처럼, 고요한 물의 반짝이는 표면을 향해 내려올 때나, 또는 그 태양의 둥근 표면이 딱딱하고 톱날처럼 생긴 나뭇잎 같은 산봉우리의 윤곽을 두드러지게 할 때인 것이다." (180)

"얼마 안되는 프랑스인들은 자연과 인간이 모두 생소한 미지의 대륙에 고립되어서 식량이 될 만한 것을 재배할 수도 없고, 질병에 시달리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그들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여 얻고, 더욱이 그들 스스로의 술책에 빠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우애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하여 유럽을 떠난 것이지만, 그들은 벌써 서로서로 개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래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빌게뇽의 기분과 그의 가혹한 행위를 그가 입은 옷의 빛깔로써 예측하였다고 한다." (208)

"우리의 학생들은 모든 것을 알고자 하였으나, 가장 최신의 이론만이 탐구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과거의 지적 업적들은 전혀 모르는 채 그들은 '최신의 사물'에 대한 열광으로 일관해 있었고, 유행만이 그들의 관심을 지배하였다. 그들은 관념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위세로써 그것의 가치를 판단하였다. 그 위세는 관념이 그들의 독점적 소유로부터 벗어나자마자 사라져보렸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자기 급우들을 지배할 수 있게 할 잡지나 안내서의 연구에 서로 다투어가며 몰두하였다.
나의 동료들과 나 자신은 이같은 현상으로 인해 매우 고생했다. 오직 충분히 성숙한 관념들만을 존중하도록 훈련받은 우리들은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당시의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서는 우리들보다 항상 2, 3개월 앞질러 알고 있던 학생들에 의해 포위`공격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습에 대한 방법이나 취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네의 논문에는, 명목상의 주제가 어떤 것이든 간에 유인원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인류진화에 대한 고찰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오귀스트 콩트의 인용문들은 제멋대로 난도질당하여 의역(意譯)된 결론으로부터 이끌어내어진 것이었는데--그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애매할수록 더 좋은 것이었다--이렇게 해놓으면 그들의 급우들이 감히 이것을 표절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238)

"요컨대 기계적인 진보는 많은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는데, 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고독과 망각이며 그것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세계와의 친밀성에 대한 대가로 주어진다." (250)

"음항과 향기가 색채를 지니며, 감정에는 무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은 그 고유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 만약에 물고기가 명암에 의해서 냄새를 미학적으로 구분한다면, 또 벌들이 빛의 강도를 무게에 의해서 분류한다면--벌들에게 어둠은 무거운 것, 밝음은 가벼운 것이므로--화가`시인 또는 음악가의 작품과 신화 그리고 미개인들의 상징은, 우수한 형태로서는 아니더라도 가장 근본적이며 또 우리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유일한 지식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야만 한다. 그 지식은 과학적 사고가 오직 날카로운 첨단--사실이라는 돌 위에다 갈았기 때문에 더욱 깊이 찌르는 것이나, 그것은 본질의 상실이라는 희생을 대가로 치른 것이다--만을 구성하는 것이며, 또 그 효능은 충분히 깊숙하게 꿰뚫는 능력에 기인한다. 
사회학자는 전세계적이고 구체적인 인도주의를 공들여 만들어내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의 규모가 큰 시위운동과 예술작품은 둘 다 무의식적인 삶의 수준에서 태어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집합적인 것이며, 후자는 개인적이라는 상이성이 있다 하여도 그 차이는 부차적이며, 다만 공중에 의한 것과 공중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나 차이가 드러날 뿐, 공중은 똑같이 공통분모를 제공하고 그들이 태어날 조건을 결정지어준다." (267)

"제일 오래된 구세계는 나이 어렸을 때 이미 신세계의 밑그림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 우리가 이국정서라고 이름하는 것은 고르지 못한 리듬을 말하는 것으로 몇 세기 동안은 의미가 있어서 서로가 함께 나누어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같은 하나의 운명을 가리어 덮어버리는 것이다." (268-9)

"세계의 이 부분(인도)을 가리키기 위해 저쪽 대륙에서 그렇게도 자주 사용하는 '아대륙(亞大陸)'이라는 말은 이제 새로운 뜻을 갖게 되었다. 이 표현은 이제 단순히 아시아 대륙의 일부분이라는 뜻을 갖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대륙'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떤 한 대륙을 가리키는 데 쓰이게 되어버렸다. 그만큼 한 순환 과정의 극한점까지 추진된 해체작용이, 종전에는 수억의 인간을 조직된 틀 속에 수용하고 있던 그 구조를 파괴해버렸다. 그 결과 오늘날에 와서는 이들 인간은 역사가 생성한 허공 속에 버려져서 공포, 고통, 굶주림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동기에 의해서 좌충우돌 사방팔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300)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위선적 억지가 아니고서는 인간이 자기의 생활 조건과 무관하게 자기의 신조를 선택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 조직이 사회의 생존 형태를 결정하기는커녕 생존 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 기호(즉 이데올로기-옮긴이)는 그것이 지적하는 대상체가 현존하는 경우에만 언어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309)

"왜냐하면 인간이 모두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서, 그러면서도 또 동시에 각각 다른 인간으로서 인지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또 상대방이 자기와 동등한 인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해가면서도,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종속관계를 만들어가면서도 공존해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 하나의 사회는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그 사상가들이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예속(隸屬)을 분비해가면서가 아니면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그 지리적`사회적`지적 공간 안에서 답답해졌을 때는 한 가지 간단한 해결책이 그를 유혹할 우려가 있다. 그 해결책이란 인간이라는 종(種)의 일부에 대해서 인간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것이다. (...) 아시아에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시아가 미리 보여주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310-11) ; 인도의 카스트제도의 실패와 나치 독일의 인종말살 작업을 연결지어 사유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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