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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부피에 비해 가볍고 따뜻하고 날개가 달린 것. 대개는 날 수 있지만 날지 못하거나 날지 않거나 날기를 의도적으로 중지할 수 있다. ‘나비가 나풀거리는 영혼의 이름이라면 는 힘과 방향이 배가된 형태의 영혼을 이른다. 아무리 작은 새라도 가장 큰 나비보다 훨씬 빠르고 강인한데, 그것은 유약한 아름다움보다 추진력 있는 상승을 선호하는 가볍고 단단한 정신의 뼈 때문이다. ‘V’자 형태의 가슴 뼈는 공교롭게도 새총의 기본 골격과 동일하다. 충분히 단단하다면 죽은 새의 가슴 뼈는 다른 새를 잡는 데 쓰일 수 있다. 혹은,

 

틈만 나면 날아오르려고 하는 모든 고집스러운 것. ‘어느새같은 것은 너무 빨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막 배달된 편지의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펼치면 접혀 있던 부분이 가벼운 뼈의 관절처럼 펼쳐지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는 게 느껴진다. 막 펼쳐진 편지는 가끔 진짜로 푸드덕거리다가 손에서 미끄러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순결한 짐승이 이유 없이 공포에 질려 달아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것 봐, 달아나지 말라구.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단 말이다. 하지만 어떤 편지들은 정말로 읽히지 않으려고 완강히 애를 쓰며 달아난다. 너무 힘주어 구부린 발가락은 펴기가 정말 힘든데, 그것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들의 발가락은 살아 있는 시간 중에서도 잠들어 있을 때 가장 강한 악력을 발휘한다. 깊이 잠들수록 세게 쥐며, 절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정말로 활활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주기적으로 잠들어 힘이 잠 속에서 자라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일찍 죽어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예문을 제시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이 먼저 씌여졌다.)

 

*

 

다른 도시에서 친구의 집에 머물렀던 어느 해, 흐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가을 날, 창문이 깨질 듯한 소리에 깜짝 놀라 나는 친구의 유일한 진짜 가족이었던 자이언트슈나우저 쉴라의 목을 끌어 안았다. 친구는 직장에 가고 나는 혼자 남아 거실에서 뒹굴며 하릴없이 또 하나의 친구인 친구 개의 털을 골라주고 있는 참이었다. (쉴라는 멋지게 구불거리는 먹색 털을 가졌다.) 소리만 요란할 뿐, 창문은 깨어지지 않았다. 쉴라는 몸을 일으키고 창문 쪽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잠시 멈추어 있더니 이윽고 현관 개구멍으로 뛰어나갔다.

쉴라를 따라 바람 부는 바깥으로 뛰어나가 앞뜰 창문 아래에서 손주박에 담아든 것은 검정과 갈색 깃에 가슴이 붉은 동글동글한 작은 울새 한 마리. 어떻게 하지? 죽은 걸까? 자살일까? 사고사일까? 묻어야 할까? 뒤뜰이나 앞뜰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을까? 너구리나 고양이가 물고 갈까? 살이 무너지고 다만 깃털이 휘날릴 때까지 던져놓은 자리에 낙엽이나 풀처럼 그냥 있을 수도 있을까? 가족이지만 인간이 아닌 쉴라가 이걸 어떻게 대할까? 쉴라는 자살한 새를 먹이로 간주할 수도 있을까? 기도를 해줄까? 새들도 천국에 갈까? 새들의 결백은 어떻게 입증할까? 새들은 모두 결백할까? 새들에게는 무엇이 죄일까? 고의로 날지 않는 것? 사고사를 가장한 자살? 결백한 모든 새들이 천국에 간다면 새들은 왜 굳이 세계에 태어나는 걸까? 내게 박제 기술이 있었다면 이 불쌍한 자살한 작은 붉은가슴울새를 박제할 수도 있었을까? 그건 예술일까? 기술일까? 아름다울까? 잔인할까? 어째서 이렇게 가볍지? 어째서 이렇게 따뜻하지? 두 손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작은 붉은가슴울새는 마치 이미 덜 존재하기 시작한 것처럼 가벼웠고 추운 날 손을 모으고 막 불어낸 한 덩어리의 날숨처럼 따뜻했다. 잠시 내 두 손바닥은 커다란 혓바닥처럼 미늘이 잔뜩 돋아 영혼의 맛을 탐식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깨어난 작은 울새는 눈을 뜨자마자 내 손주박에서 벗어나 재빨리 날아가버렸다.

쉴라는 놀라서 짧게 짖었다. 방금 전 깨질 듯한 소리로 유리창에 충돌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울새는 서둘러 세차게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내 두 손은 갑자기 강탈당한 듯 허탈감에 빠졌고, 잠시 탐닉한 모든 맛을 취소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지워지지 않았다.

추락하거나 전락하기 전에는, 새들은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리를 뻗지도 않는다.

 

나는 이것을 편지에 적어 당신에게 보내려 했지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당신을 알지 못했다. 지금이 그때라면 나는 당신에게 당장 편지를 적어 보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

 

지금은 1997년 가을이고, 방금 예기치 않게 손 안에 받아 들었던 혼절했던 작은 울새 한 마리 분량의 온기를, 나도 모르게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미래의 당신에게, 건네려 해. 이 편지는 좀처럼 펼쳐지지 않겠지. 나는 이 편지를 세심하게 접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편지를 읽기 위해서는, 당신도 적당히 힘을 주어 펼치는 정도의 노력은 해야겠지. 이 안에 적힌 손 글씨가 남긴, 막 날아갈 것 같은 완강한 힘은 작은 울새의 것이야. 나의 창문을 깨질 듯이 단 한 번 거칠게 노크한 것이 당신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어. 당신의 노크가 잠시 혼절했을 때 당신은 지금, 나를 만나기 직전이었지. 우리는 지금, 시작하기 직전이었지. 쉴라는 아직 케이블 직원을 물지 않았고, 따라서 아직 안락사 판정을 받지 않았어. 그러니까 쉴라는, 아직 새가 아니지. 쉴라는, 아직은 친구의 개지. 여러 채도의 잿빛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하늘을 향해 쉴라가 짧게 짖는군.

 

하늘에는 무수한 뒤집어진 ‘V’자들이, 뒤집어진 ‘V’자 대형으로, 이제 막 봉투에서 꺼낸 편지처럼, 편지에서 막 뛰쳐나온 글자들처럼,

거 봐, 내가 이겼지?’ 하는 표정으로 날아가고 있어.

 

참을 수 없는, 저 날아가는 한 줌의 온기들! 저 날아가는 한 줌의 온기들!

 

그리고 난 이걸 영영 증명할 수 없지. 난 이걸 영영 증명할 수 없어. 일곱 살의 당신을 고아로 만든, 방바닥을 지나가던 묽고 진한 구름의 그림자나, 어느 여름날 당신이 뒷산에서 잃어버린 낡은 소설 책, 혹은 언젠가 당신이 종로에서 줍게 될 플라스틱 피리처럼. 날아가버린, 하지만 그토록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한 줌의 날숨처럼.

 

내가 아직 당신을 몰랐을 때.

우리가 다만 꿈속에서 막연하게 암시되고 있었을 때. ()

 

 

_<문예중앙> 2012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