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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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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모르는 것들에 관하여 * 장 뤽 낭시, 이영선 옮김,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갈무리, 2012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2012년 말 무렵이었다. 낭시는 이미 라쿠-라바르트와 공동으로 출간한 책의 번역본으로 한국에 소개되어 있었고, 문학계에서 한창 ‘시와 정치 논쟁’이라 불린 뜨거운 논란 속에서 관심의 정점에 있던 자크 랑시에르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랑스 철학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나는 몹시 지쳐 있었는데(‘지쳐 있다’는 게 사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정서적인 디폴트 값이기는 하지만) 특히나 패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정치적인 환경은 계속되는 장마처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희미한 (그 어떤 종류의 신에라도) 신앙을 잃었고, 사람들에 대한 환멸에 사로잡혔으며, 그에 ..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 마르타 바탈랴, 김정아 옮김, 『보이지 않는 삶』, 은행나무, 2019. 이 책의 띠지, 출판사 서평 등에서 가장 먼저 인용하곤 하는 것은 51쪽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이 책은 무언가가 됐을 수도 있는 여성, 에우리지시 구스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 문장을 읽고 나면 한 여성의 곡절 많은 인생 서사가 펼쳐질 것 같지만, 책은 우리의 기대와는 약간 다르다. 이 책의 태반은 에우리지시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삶에 관한 브리핑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것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과 4대에 걸친 모계 중심 대안 가족의 서사를 다룬 네덜란드 영화 이었다. 이 소설은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주인공들에 투영된 자기 과시적이며 마초적인 나르시시즘과 마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