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글/작품론

폐허의 섬 파르티타-이승원

 
폐허의 섬 파르티타

이승원

건물의 사체가 먼지를 머금고 아직 직립해 있을 때
썩지 않는 생선 꼬리를 맡으며
나는 누구의 이름을 생각해냈던가

인공물이 자연에 근접하며 낡아간다 지워지고 흔들리며

지붕은 속살이 드러나
그곳에선 빤히 혼자라는 게 허기처럼 떠오르고
태양계를 벗어나는 탐사선처럼
깊은 수심 속으로 내려가는 죽음을 상상한다

살마다 녹슨 새장은 스스로를 속박한다

들떠 일어난 천장의 페인트가 나방처럼 날개를 젓고
버려진 스패너들 검어진다 네 얼굴처럼
묽게 칠한 그의 아랫도리가 가리고 있는
두 개의 흐린 눈은
언제를 기억해내려 했던가

해가 흘린 피를 유리창이 반사한다

광택을 잃은 구층 아파트의 허물어지는 베란다
느리게 몸을 열고
거품을 무는 바다에서 새가 제 흰색을 공중에 그린다

짙은 물이 고인 거대한 욕조 바닥
마개를 뽑을 때 들리는 비명소리는 언제나 물리지 않았지만
더럽혀진 젖은 손가락은 결국 어디를 가리켰는가

― <창작과비평> 2007,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