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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작품론

교련 시간-이영주

 교련 시간

 

이영주


네가 학교 옥상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을 뭐라 불러야 할까 붕대를 둘둘 말고 교련 시간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구하는 법을 배운다


『이방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너는 딱 한 페이지만 읽었다 창가 맨 뒤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의 귀퉁이를 칼날로 도려냈다


쌍둥이의 청바지는 언제나 고급스럽군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동생의 허리춤에 손을 넣고 웃었다 태양 때문에 누굴 죽이지는 않겠어 코를 킁킁거리던 쌍둥이는 한 군데서 달라진 자신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침을 뱉었다


붕대를 감는 시간보다 푸는 시간이 더 빨랐던 너, 책상 밑으로 기어가 바닥에 이마를 쿵쿵 찧던 너는 『이방인』의 살인 이후 장면은 궁금하지 않았다 붉은 물을 들이마시며 담장의 나무들이 똑같은 표정으로 창문을 긁었다


시범을 보이려 교실 앞자리에 누워 있던 쌍둥이는 모든 삼각 붕대를 풀고 일어난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우리는 간호사 모자를 썼다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데 너는 왜 내 심장을 누르고 태어난 거니


쌍둥이 동생의 꿈은 유전학자였다 밤마다 학교 담장 벽돌들의 유전자 공식을 만들며 어떤 벽돌을 빼내야 하는지 고심했다 옥상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에는 몇 개의 유전조합을 만들어야 공중으로 떠오를까


붕대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너는 꼭대기로 올라간다 자신을 구원하고 싶었던 페이지를 딱지 모양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담장에 기대어 손을 내뻗는 나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딱 하나의 다른 표정을 기억하고 붉은 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