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44) 썸네일형 리스트형 패륜적인 충고 1월 2일의 일기. 이게 다 정치 때문이다. 오래 살다 치매에 걸린 전두환과 일찍 죽은 노무현 때문에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싸웠다'는 말이 마음에 든다. '아버지가 나에게 화를 내셨다'거나 '아버지의 설교를 들었다'거나 '아버지의 꾸중을 들었다'보다 백 배 마음에 든다. '아버지와 이야기했다'보다도 마음에 들려 한다. 아빠는 살아 생전 집권시절에 노무현이 '양극화'에 대해 너무 자주 언급한 것이, 그리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 자살해버린 것이, 자기가 중산층이라 믿었던 서민들을 불행에 빠뜨리고 자살충동을 동반한 우울증 상태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아빠에게 나는 빠른 말과 논리로 대항했지만, 이전 시대 '좌파'의 뿌리 깊은 컴플렉스에 대해서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카진스키가 .. <문학동네> 2011 가을 * 우선 신인상을 받은 시인 최예슬의 등단작들 중에서 한 편; 비밀의 왕국 최예슬 먼 옛날 비밀이라는 작은 왕국에 일곱 백성이 살고 있었다 유난히 비밀이 많던 거짓말여왕, 일곱 백성을 너무 사랑하지만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모두 사형할 것을 명령했고...... 이것은 두더지 서기관이 비밀리에 옮겨적은 일곱 백성들의 유언장 귀머거리 시인 고독에 대한 풍문이 들려오면 마을 언덕에 모닥불을 피워주세요, 흉가에서 들썩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보고 싶어요. 어린이 일기를 쓰는 것은 숙제였으므로 일기장에는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었어, 엄마가 죽으면 염소에게 일기장을 먹여야지. (엄마에게는 비밀인데요 나는 시도 쓸 줄 알아요. 어제도 꿈속에서 엄마가 죽는 시를 썼다구요.) 소심한 혁명가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김재훈, "웅크린 사람" 웅크린 사람 김재훈 울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화분 하나 어둠 속에서 꺼낸 뒤 다른 어둠 쪽으로 옮겨 놓고는 암시도 없이 전략도 없이 울고 있다면 울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 2012년 1월 그냥 한 사람인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네. 그냥 한 사람인데... 오늘 뉴스에서는 간만에 웃고 있데... 그 사실이 넘 우울하네... 김정일 죽고 봉도사 잡혀가고 디도스도 묻히고 공항 팔 기세고... 말할 때마다 입술에 침 바르는 거 보면 자기도 자기가 하는 말 안 믿는 거 같긴 한데....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것도 같은데....... 그냥 한 사람인데 날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내 인생을 캐우울하게 만들 수가 있지.......미스테리네........ 황인찬, "의자" 의자 황인찬 여섯 살 난 하은이의 인형을 빼앗아 놀았다 병원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형은 나의 의사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아프다고 말했다 어디가 아프냐 물어도 아프다고만 선생님은 내게 의자에 앉으라 하셨다 의자는 생각하는 의자였다 앉아서 생각해보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울어버렸다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져서 - 2011 겨울 2011 아시아 시 페스티벌 발제문) 아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인류는 이제 단일재배를 개시하려 하고 있다. 인류는 마치 사탕무를 재배해내듯 문명을 대량생산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인류의 식탁에는 오직 그 요리뿐이리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힘의 탐구」, 슬픈 열대 아시아 시 교류 심포지움의 발제문을 청탁받은 후 저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시아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인 권역 개념으로 생각하자니, 중동 아시아와 서남 아시아, 중앙 아시아, 동남 아시아, 동북 아시아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는 건너뛸 수 없을 만큼 넓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륙 개념으로 생각하자니 유럽과 아시아가 어디에서 나누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시아’라는 말은 대충 ‘비(非)서구’를 가리키는 말이 .. A. Corelli, Christmas Concerto Op. 6 No.8 무(無)의 두드러기에 대한 명상 처음 시를 썼던 때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그것은 1987년 6월의 어느 날이었고,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작은 치자 화분에 깔린 이끼 위를 기어다니던 민달팽이를 꼼짝없이 한 시간쯤 들여다본 후였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 단순한 생물은 그토록 느린 속도로 젖은 이끼 위를 돌아다니며 화분을 빠져나갈 생각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았다. 집이 없구나, 너도. 이렇게 혼자인데 말이지. 연무가 깔린 뿌연 대기는 온화하고, 오후 네 시의 햇빛은 알맞게 익어 평온이랄지 나른함이랄지 느리게 유동하는 어떤 집중된 정서가 나를 일종의 명상 상태로 몰아넣었다. 어린아이들이 종종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이때를 생각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온몸으로 명상 중이다. 살갗에 열려 있는 ..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