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그것은 글이 아니었다. 글이 아닐뿐더러, 말조차도 아니었다. 처음 당신이,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펜을 쥐고 백지 위에 첫 음절을 적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손에 잡힐 수 없는, 파악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의 가슴 한가운데를 툭 치고 지나간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붙잡기 위해, 그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감정과 정서, 생각의 모호한 덩어리의 뒷덜미를 낚아채 당신 곁에 잠시 머물게 하려고 당신이 당신도 모르게 결심했을 때, 당신의 존재가 좀 더 현실적으로 그럴 듯하고 꽤 쓸모 있는 사람 구실을 하도록 하는 여러 유용한 제안들을 뿌리치고 용처와 가치를 알 수 없는 불면의 수고를 자처했을 때, 당신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어떤 항해에 자기의 존재를 맡긴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