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i Satria Kwan, 그러니까, 내가 철학과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가 재떨이를 던지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예반 때문에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겠다고 고2 겨울방학에 수학 문제집을 들고 남산도서관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에는 많고 많은 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처음 보는 낯선 단어들로 세계를 다시 설명하려는 사람들의 책만 모아놓은 방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한적하고 나른한 그곳에서 수학문제도, 풀기는 풀었지만, 중간 중간 집어든 이상한 책들에 씌어 있는 이상한 낱말들로 된 답 없는 이상한 문제들은,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창가 자리에 나를 붙들어두곤 했었다. 지금도 ‘공부’라는 낱말을 들으면 그 고즈넉한 겨울 저녁의 햇살이 혼곤히 비쳐들어오던 창가 자리를 떠올린다. 나는 아직도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