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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세계, 2016, 봄. 사람 그리는 노래 송승언 정원으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에는신도들이 늘어서 있고 신앙심을 시험하려는 듯이줄줄이 대기열을 만들고 혀를 내밀고 있다혀끝에서 신속히 흩어지는 것없었던 듯 새겨지는 것그것을 위해 나는 항상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낯가죽을 새롭게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혀를 내밀며 드는 생각은 이것나는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여러 갈래의 길로 이어지는 정원에 서서향나무의 뒤틀림에 경탄했다저렇게 뒤틀릴 수만 있다면 개발 중인 신도 두렵지 않을 텐데비늘조각이 육질화 된 향나무를 보며향나무 좋지...나도 좋아해말씀하시던 신부님은 맥주 마시러 갔고 나는 이제 내 팔다리의 멀쩡함을 입증하기 위해뇌에 대 타격을 입은 사람의 말을 빌려 쓴다탁구 하던 사람술집 하다가 망한 그 사람 종이 울리면 슬프지는 않았다..
우회 살들이 조각조각 난자되고 가 있다피가 번진 도마 위에 파란 눈을 뜨고 가 없어진 잉카 레스토랑에서뚱뚱보 여자들이 배를 들고 나온다피망 유령처럼 웃으며 포크와 나이프가 식탁에와 정반대의 상황으로 놓여 있다피가 번지는 도마는 계속 피가 흡수하는 도마 탐정 요리사가 빛과 그림자로 도마를 조사한다도마는 깨끗하다조사의 순서와 순환을 역조사한다도마에 깊고 긴 칼자국 문장들이 음각으로 새겨진다 도마가 아가리를 벌린다도마가 그를 삼켜 그를 가둔 도그마로 변한다 가 사라진 식탁에가 밤과 낮으로 마주 앉아 오래도록 응시한다―함기석, 「요리사를 요리하는 요리사」 전문(『뽈랑 공원』,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1. 서양철학의 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인 존재론과, 그 연장선상에서 정신분석학에서 출몰하는 ‘그것(it)’의..
수신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끔찍한 뉴스들이 현저히 많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은 단지 저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도 대형 참사들은 있었고, 패륜적인 범죄는 저질러지고 있었으며, 전쟁과 테러가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저의 세대 사람들에게, 잔혹함의 여러 유형들이 이토록 종류와 규모에 있어 많고도 다양하게 짧은 기간 동안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적이 없었다는 느낌은 쉽사리 떨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 때문에 가능해진 체감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공중파와 종이 신문만 있었던 시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미디어의 통로들을 시간의 제약 없이 접하고 있습니다. 알려질 수 없었던 참상들과 그 세부를 이제는 우연히 ..
천년왕국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그러니까, 1991년 늦가을, 아직 종로에 종로서적이 있었을 때였다. 나는 막 고교 2학년 진학을 앞두고 본격적인 문청 행세를 시작하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허세를 완성해줄 책 한 권을 사게 되었다. 한 영문학자가 엮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한국문학: 후기산업사회의 문학적 대응』이라는 이 한 권의 책은, 정말이지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등하교 시간의 버스 속에서 여드름투성이 안경잡이 고등학생의 자긍심을 키워주기에는 그만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저 옛날 고교 비평준화 시절,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1급 문예지였다는 지라든지, 선배들이 교류했던 내로라하는 공립 고등학교 문예반들에서 오랜 세월 보내온 교지들, 70-80년대 문학잡지와 시, 소설 등으로 가득 차 있었던 문예반실 책장..
먼 문학 문단 밖에서는 관심도 없는데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우리끼리 문학이 죽었네 살았네 빈사 상태네 좀비가 되었네 여러 견해들을 참으로 복잡하게 표방했었지... 그런데 그 역사적이고 보편적이며 미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은 한국문학과는 너무 먼 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어느새 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환유되어버린 한국문학은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 있네... 인류의 대표로서 쓰는 선후배 동료 은사들이 아직 적잖게 있는 걸 난 분명 알고 있는데... 한편, 모르쇠->부인->꼬리자르기->책임 소재 떠넘기기->비판이 쇄도하자 대리인이 사과의 제스처->조속한 대응 약속. 대표적인 진보문학 진영을 자처했던 출판사의 일련의 대처는 보수 정권의 메르스 임기응변과 너무 닮아서 소름끼친다. 문학과 한국문학 사이는 (아직도) 너무 먼가보..
학원 가기 싫은 날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국에는 두 가지 유형의 모자관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는 유형이고 두 번째는 '학원 가기 싫은 날 엄마를 이렇게 저렇게 먹는' 유형이다. 아, 아니구나. 이 두 가지는 같은 유형인지도 모르겠다. 저 논란 속의 '동시'는 예술성의 수위 문제 이전에(여기에 관해 논하려면 시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영상물의 등급 심의에 관해 먼저 논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가학-피학적인 한국적 모자관계의 역학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생각난다고 다 쓰는 걸 예술성의 핵심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쓰여진 표현이 오직 금기 파괴적이어서 예술적으로 호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을 강제하거나 굴욕감을 주는 부모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
(스크랩) 황현산의 김춘수론 시 언어, 의미와 이미지에서 자유로워라[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보기] (24) 사물이 된 언어 또는 무의미의 시수정: 2015.01.14 19:38등록: 2015.01.14 13:48공유하기공유하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트위터로 보내기네이버 밴드로 보내기인쇄하기화가의 물감·작곡가의 음표처럼시인의 언어는 용도가 아닌 사물의 외곽에 있는 순수한 존재염불 같은 시 쓰려한 김춘수의 작품관념을 억압하고 깨려한 것보다 무의미조차 의식 안한 시가 더 좋아김춘수 시인한국 사람들이 ‘사물로서의 낱말’이니 ‘사물로서의 문장’이니 하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김붕구 선생이 1959년에 번역한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일반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물을 ‘지시’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데 비해, ..
미감과 포만감 다른 많은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처럼 우리 동네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장이 선다. 아파트 단지에 서는 장은 먹거리를 사러 갈 곳이 없어서 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입구며 후문 쪽에 벌써 서너 개의 슈퍼마켓과 가게가 있고 어지간한 채소며 생선, 정육 등을 10분 거리 내에서 살 수 있으니, 아파트에 서는 장은 그보다는 무언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만족시켜주는 일종의 문화적인 것에 가까운 듯하다. 게다가 공산품이나 냉동식품이라면 몰라도 신선식품을 주말에 대형 할인마트에서 대량 구매하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수고를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오늘이 마침 장날이라 저녁에는 오징어무국이나 끓여볼까 하고 홍고추를 사러 나갔다. 전날 가게에서 다른 재료는 사놓았지만, 이상하게도 단골 가게에서는 상태가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