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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는 나의 허물

orinto 2025. 6. 19. 22:31

두 번째 시집이 나왔을 때 나는 신경외과 병동에 있었다. 수면마취 없이도 위 내시경을 무난하게 견딜 만큼 통증에 둔감한 내가 “시인의 말”을 쓰고 얼마 후 오른쪽 머리부터 어깨를 거쳐 팔과 손가락까지 불에 지지고 끌로 긁어대는 듯한 통증에 울면서 밤이 새기를 기다려 간 근처 제법 큰 병원에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사지 마비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울프 노트』는 인쇄소에서 으르렁거리면서 자기 울음을 복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 무서운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친정 근처 관절척추전문병원에 두 번째 견해를 들으러 갔다. 다행히 두 번째 의사는 몹시 보수적이어서 몸에 칼 대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숟가락조차 들기 힘든 더러운 몸도 6주간 통증을 참고 나면 수술을 면할 희망이 있다며 입원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아프다는 것과 병원비 정산만 제외하면 병동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평등이 구현된 곳이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똑같이 생긴 침대에서 잔다. 수도원과 사관학교와 감옥이 그렇듯이.

의사가 가장 먼저 금지한 것은 읽고 쓰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읽고 쓰는 것만 그만두면 그럭저럭 건강하게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렇게 쓰니 마치 내가 경추디스크를 갈아버릴 만큼 열심히 읽고 썼을 거라 오해할 수 있지만 디스크는 40% 이상 유전적 소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때 나는 기내용 여행 가방에 입원 전날까지 강의하던 시 창작 수업에 쓸 강독 자료와 출석부와 학생들이 쓴 시와 내가 쓰다 만 시와 신체 일부처럼 들고 다니던 일기장과 조르주 바타이유의 『문학과 악』과 지안니 바티모의 『근대성의 종말』을 넣어 병실에 가져다 두었는데, 의사에게 혼쭐이 난 이후에는 모두 그냥 무거운 쓰레기더미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 대신 나는 스테로이드와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과 펜타닐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그 모든 약물들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지만, 생지옥을 면하게 해준다. 문학도 악도 근대성도 종말도 통증 관리 이후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뼈와 근육과 피와 살을 가지고 있고, 문학과 철학과 신학은 몸 없는 정신의 한가로운 사고실험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새 시집 20권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 환자복 차림으로 내가 처음 이 시집에 서명을 넣어 건넨 사람은 회진 온 주치의였다. 그는 자기 자신 척추센터 과장이었지만 회전률이 극도로 빠른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목과 허리 사진을 매일 들여다보느라 건강을 해쳐 갖가지 영양제와 약물로 자기 육신을 간신히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물론 내 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하는 시에 대한 고민의 커다란 부분 중의 하나는 모두 이런 아이러니와 딜레마에 관련되어 있다. 내 삶의 가장 우울한 시절을 건너며 냈던 첫 시집을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 친구 딸이 읽고 우울증 발작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나, 내 육신의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기 역시 고통 속에 있는) 주치의가 내 두 번째 시집을 읽고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그래도 문학을 향유하는 ‘사치를 부리고 싶어’ 문학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분명히 문학의 첫 번째 기능이 치유나 위로라는 대중적인 믿음에 지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자괴감에 휩싸이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시의 목적이 치유나 위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하여간 무슨 목적이든 시에 목적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시는 치유와 위로의 힘을 발휘한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박봉에 시달리다 지금은 필라테스 강사로 전업한, 매일 나를 만져주던 물리치료사 윤지은 씨는 어떻게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렇게 늘 목과 어깨가 딱딱한지 의아해했다. (내가 시집을 선물한 두 번째 사람이다. 그녀도 내 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목과 어깨가 딱딱해지는 건 나의 신비한 능력 때문이었다. 혼자 어떤 개념적 상상에 빠지면 움직이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그 생각의 타래를 좇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이는 집중력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멍 때리기 능력이라 좋게 말해주지만 나의 능력은 집중력이라 부르기에는 좀 비생산적이고 멍 때리기 능력이라 부르기에는 좀 너무 관념적이다. 만일 내가 즐기는 것이 몽상이거나 감각적 상상, 진짜 멍 때리기였다면 목과 어깨가 딱딱해지는 대신 꿈꾸는 눈이 되거나 엑스터시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내가 이런 사람인 것을 어떻게 하겠나. 이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력,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구두점 하나까지 잘근잘근 씹어서 전부 집어삼키려는 과도한 식욕, 한 가지 주제에 꽂히면 그에 관한 모든 관점의 논의와 반박 가능성을 생각해내려는 말도 안 되는 욕심하고도 관련이 있다.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몰입을 방해할 의도적인 주의산만이 필요했다.

아무튼 신경외과 병동 시절 이후 나는 인생관이 좀 바뀌었다. 특히 통증을 참을 수 없었던 어느 날 저녁에 주치의가 주사제에 약간의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던 날 겪은 무시무시한 환각과 그날 새벽 의사의 현명한 대처 이후부터 그렇다. 그날 밤, 혼자 있던 2인실에서 동트기 직전까지 나는 어두운 병실 벽을 빠르게 기어다니는 손을 보았고, 그 손에 달린 다섯 손가락이 벽에 부딪치는 타다다닥 소리를 들으면서 턱이 덜덜 떨리고 아래위 이가 딱딱 부딪칠 만큼 공포에 휩싸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니엘서에서 벨사살 왕이 본 손가락이나, <말테의 수기>에서 말테가 본 손이나, 김춘수가 수필에 써놓은 어린 시절 책상 밑에서 본 손처럼 전형적이기도 하지만(어쩌면 이 손들은 모두 구약성서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애덤스 패밀리>의 더 씽The Thing처럼 내 환각도 내 취향만큼 B급이라 생각하면 희한하게 웃기기도 하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 링거스탠드를 끌고 스테이션의 야간 당직 간호사에게 갔다. 병실에 손이, 손이 계속 뛰어다녀요. 그녀는 놀라서 주치의에게 전화를 했다. 주치의는 나를 빠르게 안심시키고 곧 중화할 약제를 투여하도록 간호사에게 지시하겠다고 했다. 간호사가 무언가 투명한 약제를 나에게 주사했고,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회진 온 주치의는 간밤의 트릭을 말해주었다. 그가 투여하도록 한 약물은 식염수였던 것이다.

나는 그때,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읽고 쓸 수 없었다. 읽고 쓰기를 금지당하자 이상하게 홀가분했고, 그 평화를 즐겼다. 아무에게도 밥해주지 않아도 되었고,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읽고 쓰지 않아도 되었다. 단지 실컷 멍 때리고 느끼기만 하면 되었다. 통증을 1과 10 사이에서 가늠하면서, 식사 후 옥상 흡연실에서 처음 보는 다른 아픈 사람들과 모르는 척 다른 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태우고, 가끔 박하사탕을 나눠 먹었다.

나의 시가 이런 박하사탕 같은 것이면 좋으련만, 병동 옥상의 흡연구역 같은 것이면 좋으련만, 주치의의 위약 처방 같은 것이면 좋으련만, 나의 시는 자꾸 아픈 이를 흔들어보고 싶어하고, 무례하게 벽에서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뛰어다니려 하고, 내 삶의 과속방지턱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바퀴처럼 덜컹거리려고 한다.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첫 시집이 나왔을 때 그 이물감 때문에 나는 한동안 시집이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놓았었는데, 그건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의사에게, 무서워요, 저리 치워주세요, 라고 말했던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였던 것 같다.


나에게 시는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유출물과 같은 것이었고, 때로는 간절함의 산물이었고, 기도의 최소한의 형태였고, 때로는 나만의 가장 내밀한 장난이었고, 연애편지였고, 복수의 맹서였고, ‘호르몬의 부기우기’(헨리 밀러가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였고, 결국 1인 부대의 1인 시위였지만, 요약하면 나의 시는 나의 허물이라고나 할까. 이전의 나의 무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나의 과거의 몸. 한 가지 희망은, 파충류는 느린 속도로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는 거다.

도마뱀은 허물을 벗고 나면 자기 허물을 먹어버린다고 하던데, 나는 이렇게 과작하는데도 너무 많이 흘려놓았으니, 벗들이여, 내 허물을 마음껏 들추어보시고, 휘저어보시고, 찔러보시고, 만일 쓸모가 있다면 허리띠라도 만들어 매시고, 그렇지 않으면 숲에 던져주시오. 오랫동안 이슬 맺히고 햇볕에 마르고 마침내 고이 썩어서 따뜻한 거름이 되도록.

얼굴을 잊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던 병동 옥상의 흡연 친구들이여, 오래오래 살아서 그대들도 시를 써볼까 한번쯤 생각하는 날이 오기를. 디스크가 터지도록 읽고 쓰거나 고생하는 일은 생기지 말기를. 싱싱한 척추를 지니시기를. 가끔 나는 내가 벗어놓고 나온 환자복이 그립습니다. (끝)

-<현대시학> 2025년 1-2월호

The thing runs tow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