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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그 말은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안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들도 가장 고결한 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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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계절 학기 수업 보고서에서 읽은 문장 몇 개가 잊히지 않는다. 광장에서는 한창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고, 수업이 진행되던 중에 헌재에서는 탄핵 심판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3주 동안 평일 겨울 오후의 강의실에서 몇 권의 시집과 몇 편의 단편 소설, 또 몇 편의 에세이를 함께 읽었고, 이 세미나에 가까운 수업은 최근 몇 년 간의 사회적 사건들을 화제에 올리며 종종 격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내가 지나온 20대와는 완연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20대의 친구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홉스봄의 말대로 과거가 타국이라면, 내가 살았던 20대는 지금의 20대에게는 체험될 수 없는이방이다. 그러니 나의 타국 생활에 대한 재서술을 그들에게 참조거리로 제공할 수는 있을지언정 나의 체험을 온전히 공감하라는 요구는 불가능하고도 부당한 것일 터, 타인이 살아본 적 없는 과거의 관습에 비추어 판정하기 좋아하는 어떤 오래 산 사람들은, 자기가 지나온 시간의 영속적인 순간에 사로잡히는 대신, 우리가 시간의 여행자들이라는 생각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경험이란, 구체성의 측면에서 종국에는 각자의 고독한 실감 속에서 언제나 주체의 변화 속에 있고 또 그 변화에 복무하는 것이라서, 다른 시간대 속에서 같은 사건들을 겪고 있는 우리 각자는 될 수 있으면 자기의 체험을 자기의 언어로 정직하게 나누는 훈련이야말로 공통 감각을 세련하고 세심하게 형성해나가는 데 복무하는 일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수업에서 늘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토론에 참여했던 한 친구는 평론을 써 내야 하는 마지막 보고서에서,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읽고 화자의 소외에 관해 이야기한 뒤, 말미에 다음과 같은 자기 체험의 문장들을 부기처럼 남겼다; “나는 외로움을 경험했다. 모두가 슬퍼하는 속에서 슬프지 못하는외로움이었다. 나는 슬프지 못해 슬펐고 공감하지 못해 슬펐다. 나 자신이 낯설었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세상은 나에게 슬퍼하라고 강요했다. 경계를 허물고 타자를 완전히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 자발적이지 않은 경계의 허물어짐은 죽음이 아닐까. 많은 아이들이 물에 잠겨 죽었고, 살아 있는 사람들도 슬픔에 잠겨 죽었다. 슬퍼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세계는 죽으라고소리쳤다.”


나는 이 문장들에서 어떤 절규를 들었다고 느꼈다. 물론 그는 토론 중에 저 경험을 이미 토로한 적이 있었다. 논의는 슬픔의 연대즐거움의 연대’, 곧 세월호 사건 당시의 압도적인 슬픔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윤리적 당위에 대한 자신의 반응과 촛불집회의 흥겹고 유쾌한 창의적 대응에 대한 감흥을 비교하면서 시작되었고, 저 문장들의 주인은 재미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오랫동안 광장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슬픔 앞에서는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여러 반박이 뒤따랐다. 가족 단위 촛불집회의 유쾌함이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중산층 학부모의 역사 현장 교육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아이러니에 대한 씁쓸함, 타인에 대한 공감의 진정한 필요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지 않겠는가 하는 인륜성에 기초한 의문. 그러나 저 보고서 마지막 문장들의 어떤 부인할 수 없는, 경험의 순간적인 진실 앞에서 나는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라도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없앨 수는 없다는 샤르코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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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못해 슬펐다는 문장 속의 두 개의 슬픔은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타인의 얼굴이 갑자기 너무 바싹 다가왔을 때 소스라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치고 말았던 크고 작은 경험들; 저 슬픔의 해일은 나를 집어삼키려고 다가온다. 나의 슬픔을 한 방울 더 보태는 것이 얼마나 유용할까를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겁에 질려버린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는 얼굴은, 나에게 죽으라고소리친다. ‘는 붕괴되어버릴 것이다. ‘는 저 슬픔과 부정성 속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다. 이 문장들을 썼던 그 친구는 자기가 마주한 슬픔과 그 반응으로서의 자신의 슬픔에 관해 훗날 어떻게 기술하게 될까? 그 순간의 화학반응을 우선, 충실하게 떠올려 기술하기로 한 결심이 보고서에 이 문장들을 망설이다가 반드시부기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은 그의 시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 간과해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순간을 앓는 일이 시의 몫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그것은 넓이라기보다는 깊이의 일이고, 휘발성 감정들이 남긴 찜찜함을 오래 숙고하고 발효시킨 뒤에야 비로소 얻어낼 수 있는 일일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막다른 골목의 질문들은 당분간 이런 종류의 것들이다; 진짜로 나의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날느낌(raw feeling)에 가닿을 수 없을 타인의 고통, 이때 마땅히 느껴야 할 바라고 간주된 공감은 어디까지 공감인 것일까? 공통감각(common sense)공통의 깊이는 몇 미터일까? 몇 킬로미터일까?


넓을수록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알겠다. 우리는 촛불의 면적을 넓히기 위해 걸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그도 안 되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추체험하면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왜 촛불은 모든 것이 가시화된 이후에야 이미 드러난 것을 밝히게 된 것인가? 어째서 압도적인 불행이 현재 진행 중이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인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원수를 사랑하라가 사실 같은 것을 의미할 때, 우리의 무력(無力)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하나이며 둘인, 불가능한 명령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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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경험과 주관성(혹은 이 낱말의 부정적 함의를 고려하여 주체성, 어쨌거나 subjectivity), 혹은 경험의 주관적 특성, 심리철학자들이 감각질(qualia)이라 불렀던 것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에게, 저 문장들이 불러일으킨 내 의식 표면 아래의 혼돈스러운 감정은 시와 평론과 논문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수치심과 죄책감, 아니 그보다는 자격 없음의 자괴감으로 물들어 있었던 최근 몇 년 동안의 나의 근황과 단단히 얽혀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것은 사멸해가는 운동권의 자장 안에서 20여 년 전 여름, 여느 때처럼 과방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무너져가는 소파에 앉아 있었던, 수년 전 위장 취업한 공장에서 연차 휴가를 받아 나온 86학번 선배를 보았을 때의 감정과도 흡사하다.


끝내 본명을 알 수 없었던, ‘감자 누나라고 불리던 그 선배를 그 전에도, 이후로도 본 적이 없지만, 지금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녀를 그릴 수 있다. 그녀는 때 묻은 발에 때 묻은 슬리퍼를 신고, 다 늘어진 빛이 바랜 티셔츠와 낡은 7부 바지를 입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반가사유상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푸석푸석한 얼굴과 창백한 입술은 다음과 같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겐 시간이 없어. 이것이 나의 생활이고 삶이다. 이것이 나이며 누구에게 공감이나 이해를 바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푸라기처럼 마르고 윤기 없는 그 선배의 윤곽은 주변의 모든 것을 후경으로 밀어버리고 송곳처럼 내 눈을 찌르고 있었다.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인 삶이란 저런 것일 텐데! 하지만 왜 나는 다가가기 싫은 것일까! 말조차 걸기 싫은 것일까! 내가 아무리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써도, 나는 저 사람의 시간과 감각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 아니, 그 이전에 내 오성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내 감성은 그 이해 내용을 감각으로 수용할 수 없을 거라는 즉각적인 예감.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타인의 경험과 내력으로부터 결국 소외되고, 타인의 감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느라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도 소외되고, 그리하여 죄책감을 느낄 자격조차 상실한 채 안전한 세계의 배부른 돼지로 살아남을 것만 같았던 그때의 불안이 고스란히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나아가 그 장면은 80년대 문학이 내게 암시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압축하여 육화했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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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내가 쓴 글이 인쇄되어 있는 책자가 집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봉투도 뜯지 못한 채 몇 달씩 쌓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못 이기겠다는 듯 봉투를 뜯을 때마다, 어쩐 일인지 과거를 반복적으로 살고 있는 나를 붉어진 얼굴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쓰기로 했었단 말인가? 쓰기로 할 때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쓰기로 했을 때 용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쓰면서는 첩첩산중의 곤혹을 확인하며 자책과 심문이 되고, 모든 의문은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왔는데, 그것을 나름의 윤리라고 생각해버리기에는 주관성의 폐쇄회로를 양심의 용광로라고 치부해버리는 교묘한 술책인 것만 같아 현재로부터 도망치고픈 심정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촛불 집회 인원이 백만 명을 넘어갔을 때, 나는 마감일을 넘긴 시 원고를 쓰지 못하고 안절부절 TV와 책상 사이를 서성이며 그날 밤 겨우 몇 구절의 일기를 적었을 뿐이다; 지금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나치게 슬플 때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꾸역꾸역 울며 끅끅 신음하지, 시를 쓰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기쁠 때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환호성을 지르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지,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 모든 화급함은 발효될 시간이 없고 발효를 기다리지 않는다. 저 광경 앞에서 저 광경 이상의 시는 당분간 나오지 않는다. 펑크를 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라는 김수영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것 같다,


고 적었는데, 아뿔싸, 이 시의 첫 행이, 그리고 매연마다 첫 행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라는 것을 기억해낸 것은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이상한 일이다. 사회사적인 흐름은 분명 낙관적이고, 우울하고 기괴한 무조음악처럼 머리 위를 떠돌던 정치적 기후는 바뀌어가고 있는데(물론 그 기괴한 ()음조는 너무 오래 들렸기 때문에 내 몸은 오랜 기차 여행 후 땅에 발을 디뎠을 때처럼 아직 그 파동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여전히 키르케고르 말마따나 장기를 두고 있는 상대방이, ‘그 말은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였을 때에, 그 말이 느끼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나는 너무 많은 이유를 갖고 있고, 그 이유들은 대개가 서로 모순되는 이유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이유를 댈 수가 없다.”는 속엣말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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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 글이 실릴 바로 이 잡지의 지면에 썼던 글에서 나는 당시 내가 실감하고 있었던 총체적인 삶의 배경음악에 벌어져온 광범위하고 아이러니한 음조의 변화와 불길한 조짐을 기분과 마음의 분리로 설명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런 저런 여러 감각적 자기 관리 기술을 통해 유지되고 있던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이라는 지각 아래 천천히 대류하고 있었던 죽고 싶은 마음의 검은 맨틀이, 뒤틀려 폭발할 수밖에 없는 몇 번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설마 했던 것들이 정말 그랬던 것에 대한) 충격은 어떤 기분들을 비로소 마음과 일치시키는 경험을 가져왔던 것 같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정의로운 휴먼 다큐멘터리로. (그때 쓴 글을 몇 문장으로 바꾸어 지금-여기에 적용해본다면, 이제는 미디어에 잘 나오지 않는, 한때 대선 후보였던 사람의 말을 조금 비틀어 이렇게 말해볼 수 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기분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계절에 읽은 글을 인용하자면, 그것은 충격에서 비롯된 정신적 외상을 통해 출현하는 리얼리즘, 트라우마적 리얼리즘으로 해석될 오늘날의 재현 양상이 재현하려는 현실 자체가, ‘경험되지 못한 경험 속에 잠긴 경험이라는 제반 조건 하에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아도르노의 서정시와 사회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의 멋진 인용문을 소개해준 이 글의 필자는 경험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능에 일침을 놓고 어떤 불가피한 곤혹을 언어화해주었다. “고통의 사회적 기원을 말하고자 한다면 더욱 주관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관성은 바로 언어를 통해 객관화된다고 말이다.”


나는 저 아도르노의 에세이의 원문을 찾아 읽는 수고를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치에 동조하면서 수용소 생존자인 유대인 시인 첼란을 사랑하여 토트나우베르크(나치 독일 당시 수뇌부들의 회의 장소로 제공됐던 하이데거의 별장)에 초청하기도 했던 하이데거의 역설이 몹시 음울하고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면,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으나, “왜 서정시가 사회를 끌어들이며 옥신각신하지 않을 때, 아무것도 의사소통하지 않을 때, 자신의 표현에 성공하는 주체가 언어 그 자체와 일치하고 언어의 내재적 경향과 일치할 때 사회 속에 가장 깊이 근거하게 되는가를 이야기하는 아도르노의 역설은 저 인용된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떤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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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진행했던 김수영 시 읽기 강좌의 마지막 순서인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죄와 벌같은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은 분명 문학에 대한불만의 새삼스러운 발견과 결부되어 있었고, 그 불만의 발견은 이전에는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그 시에 관해 자기를 폭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염결성과 윤리성의 사례로부터, ‘대체로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시인의, 의외로 지질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자기 죄과에 대한 뻔뻔한 고백으로 해석의 방점을 옮길 수밖에 없게 된 어떤 화급함을 증거했다. 나는 이 시의 첫 연 남에게 희생을 당할/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와 곧바로 시작하는 다음 연의 그러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 시의 배경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단단히 버티고 있으며 라스콜니코프의 양심에 따른 살인을 통해 작가가 감행했던 사고 실험이, 자신이 선의의 담지자라고 은밀히 생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지, 도스토옙스키가 벌레 같은 전당포 노파는 죽어도 괜찮다고 역설하기 위해 그 작품을 쓴 게 아닌 것처럼, 김수영도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혀도 된다고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기를 시의 형식으로 폭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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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에 관해서라면 이런 완소시인을 박사 논문에서까지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나마저도 인터넷 포털 어딘가에 새삼스럽게 올라온 그의 죄와 벌에 관한 에피소드 중심의 기사와 그 아래 나래비를 선 문학하는 놈들 믿을 놈 하나도 없구만같은 댓글들을 읽으며 복잡한 심경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휩싸인 나머지, ‘어쩌면 이렇게 지질할 수가!’라는 경악감을 자기 자신에게 가진 자가 그것을 남에게도 읽히기로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의 실행으로의 그의 시작 행위와, 그 결과로 취소할 수 없도록 문학사에 남게 되고 만 작품이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어쩌면 이렇게 지질할 수가!’라는 바로 그 반응이었다는 것을, 이상도 하지, 나는 잊어버렸거나 내 간교한 무의식이 잊은 척 하고 말았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부는 초인을 옹호해서, 2부는 계몽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상당해서 당대 러시아 평단의 양 진영(니체주의자들과 슬라브주의자들) 모두의 환영을 받았던 것 같은 그런 행운을, 김수영의 죄와 벌은 누릴 수 없었다.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은 허구이고 김수영의 아내 구타는 실제였기 때문은 아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유형지로 가고 김수영은 60년대 실정법을 위반조차 한 적이 없고(당시 아내를 구타하는 것은 위법조차도 아니었고), 그래서 벌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인 것도 아니다. 그 시는 시의 범형으로 소개되기에는 미학적으로 조악했고, 문제작으로 거론되기에는 너무 졸렬한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이 시의 진심이 무엇인지 몹시 우회적으로 추측할 수만 있었기 때문에, 그의 염결성에는 여전히 아내에 대한 오랜 복수심의 지울 수 없는 핏빛 얼룩이 묻어 있었을 거라고, 추정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김수영은 저 시를 자기에게 벌로 부과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와 벌같은 제목은 달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자기를 처벌하는 의미로 저 시를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게 다가 아니라는 항변을, 그 찜찜한 느낌을 자기 조롱과 함께직조하고 있었을 거라고. 자기의 실감을, 윤리로 포괄되지 않는 잔여물을, 결코 누락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진짜 제목은 죄도 짓고 벌도 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역시 죄와 벌로 줄이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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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츠가 셰익스피어에 관해 쓴 말을 듀이를 통해 재인용하자면, 셰익스피어는 탁월한 부정적 능력의 소유자. “, 셰익스피어는 사실과 이유를 끝까지 집요하게 추구하지는 않는 사람이며, 불확실하고, 의문투성이이며, 신비로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키츠가 고대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송가에서 노래했던 그 유명하고 노골적인 시구처럼 만일 아름다움이 진리이며/진리는 아름다움이라는 대담한 가설에 마음이 기운다면, 그리고 그 진리’(truth)가 아무래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다라든가 샛별과 개밥바라기별은 동일한 별의 다른 이름이다같은 문장의 진리치(truth value) 같은 것과는 다르다면, 박쥐에 관해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져도 박쥐가 날아다닐 때의 바로 그 느낌을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우리는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미학과 윤리가, 동일근원인 경험의 실감으로부터 발원한다면, ,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생각해도, 예술과 함께, (예술과? 함께?)


윤리적이 된다는 것은 경험을 매끄럽게 가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일 것이다. “슬프지 못해 슬펐다는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이 내게 어떤 시적인 절규의 감촉을 남긴 것은 아무래도 그 이물감을 누락할 수 없었던, 자기를 속일 수 없었던, 부정성의 뾰족한 모서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종종 악(실체적이든 유명론적으로든 단지 한시적인 비유로든)과 전혀 구분할 줄 모르는 (척 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 그렇게 할 때에는 다소 편안한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기분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문학과 사회> 2017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