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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영감 없는 세계

2011. 4. 25. (月) 비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쓴다. 생각? 써야 한다는 느낌 때문에 쓴다. 만년필이 아니면 안 된다. 연필이어서는 안 된다. 볼펜이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뚜껑을 뒤꼭지에 끼운 채로 써서는 안 된다. 인과관계가 명확한(명확한? 그런 게 있나?) 정합적인 문장들을 접 붙이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토요일에 포기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잎들이 배신자들처럼 삐죽삐죽 못된 혓바닥처럼 솟아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꽃들이 죄 벌어져 떨어져 날리기 시작한 중이었다. 햇볕이 따가웠고, 그렇지만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추웠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런 때도 있는 거야, 라고 스승이 말했다. 내가 가장 비참할 때 스승은 자상했다. 그렇게 좋은 스승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정말 용감하다,라고 또 나의 벗이 말했다. 비참을 용기로 바꿔준 그가 고마워서 나는 거의 울 뻔했다. 이렇게 좋은 벗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내게 환상도 거의 없는, 그것이야말로 대박 행운이다. 이런 행운 속에서 나는, 그렇지만, 나 자신은, 뭐가 뭔지 하나도 확정할 수 없는 세계에 against하고 있는(against는 물론 전치사다) 나 자신은, 무언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표정은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지을 수 있는데, 그건 그렇고,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지? 죄 맛 없는 것들뿐인데. 시든 입맛. 시든 욕망. 시든 꽃. 시들시들한 책들. 가득. 성황당 돌 무더기처럼 책상과 방바닥 위에 계통 없이 무더기 무더기 쌓인. 저 위에 돌 하나를 더 얹고 무슨 소원을 빌까. 난 소원도 없고 神도 없는데. 읽을까, 말까. 쓸까, 말까. 만날까, 말까. 잘까, 말까. 먹을까, 말까. 피울까, 말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런 짓들을 하고 있다고 더러운 합리화를 하고 있지만 나는 사실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쓸 수도 안 쓸 수도 잘 수도 안 잘 수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로티가 한 가지 옳았던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우리 자신인지, 사실은,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지금 선택한다 해도 나는 M.이 될 수 없고, R.이나 B.나 Z.나 ㅎ이나 ㄱ이 될 수 없고,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정작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치욕적이고 민망한 일일 것이고, 그렇다면 자기는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만든 것인가? 만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주 작은 자기 자신이었다가 커다란 자기 자신이 된 것인가? 40cm, 2.9kg에서 169cm, 55kg으로? 뻥튀기 된 것인가? 나의 자기 자신은 여전히 40cm, 2.9kg이고 나머지는 문화의 코일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게, 나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대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일기장? 저 무시무시한 조류의 똥 무더기 같은 냄새나는 퇴적물로? 마무리 같은 건 하지 말자. 비겁하게.

죽기 직전에만 이별이 있다. 그건 만남과 헤어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한밤의, 지독하게 공포스러운 생존 병사의 마비된 다리의 자동 보행 같은 것. 넘어지면서. 거듭, 걸려 넘어지면서. 사람들은 그가 도망쳤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가 본 참혹에는 관심이 없다. 

영감이 없는 이 세계가 한없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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