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글/tender

어떻게 죄책감 없이 감자를 토막 낼 수 있는지에 관하여

  응달에 둔 감자가 서서히 퍼렇게 질리고 있다

 

구워 먹고 삶아 먹고 튀겨 먹고 볶아 먹고

밥에 넣고 국에 넣고 갈아서 부쳐 먹고 삶아서 으깨 먹고

그러고도 남아서 응달에 펼쳐둔 감자

 

아, 재밌어. 다음번 생에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하지만

다른 많은 감자와 함께 상자에 실려 우리 집에 온 저 감자가

다음 생에 사람이 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끔찍한 말을 하는 능력을 지닐 수도

그런 능력에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

 

“응급상황 시 아이들을 먼저 구조해주세요”

라고 차 뒷유리에 스티커를 버젓이 붙여놓고 좆같이 운전하는 새끼들은

끝까지 쫓아가서 박아버리고 싶어

라거나

죄를 용서받고 싶거들랑

네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라거나

나를 찌르고 싶나? 난 이미 전생에 껍질이 벗겨져 난도질당하고 으깨진 적이 있어

라거나

 

감자로 이런 상상을 하는 건 무해하지

감자는 피가 하야니까

감자는 내장이 없으니까

감자는 뇌도 없고

눈코입도 없으니까

아니다, 눈은 가끔 나는구나

식중독 예방을 위해

가급적 도려내는 것이 좋다

 

감자는 살아 있는데

가만히 두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펴서

가위바위보

번식도 할 수 있는데

땅속에서 꿈만 꾸고 있을 수도

꿈꾸면서 집채만 해질 수도

백 개의 다른 감자가 될 수도

죽어서 끔찍한 사람이 될 수도

이름이 생길 수도

끔찍한 사람의 피와 살이 될 수도

 

있는데

헐값에 팔려온 햇감자

응달에서 서서히 퍼렇게 질리고 있다

-「 트레드밀」 전문

 

 

어떻게 해먹어도 맛있는 식재료 몇 가지가 있는데, 나에게는 콩과 감자가 그중 으뜸이다. 콩과 감자로 만든 것은 모두 다 맛있다. 어릴 때는 콩밥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어처구니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뉴스 속 주인공을 보고 ‘콩밥을 먹여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콩밥이 맛있어서 악행을 교정한다’는 말로 오해하기도 했다. 콩과 감자는 참 잘 어울린다. 콩으로 만든 된장을 찌개로 끓일 때 감자를 넣지 않으면 된장찌개가 완성되지 않는다. 콩으로 만든 간장을, 토막 낸 닭고기에 맛술과 함께 넣고 끓일 때 감자를 넣지 않으면 찜닭이 완성되지 않는다.

콩콩거리니까 콩 얘기를 하려나 싶겠지만, 나는 오늘 감자 이야기를 하겠다. 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나에게 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나는 대개 도망가버리고 싶다. 학교에서라면 도망갈 수 없으니까 남의 시 이야기를 하지만 내 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대개는 도망가버린다. 이것은 나의 쑥스러움 때문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얼굴을 접어서 목 안에 넣고 싶어진다. 손발도 오그라들어서 몸통만 남은 감자처럼 된다. 하지만 원고를 펑크낼 수는 없으니까 아주 조금만 하고 하지 않을 것이다.

2년쯤 전에 감자에 관한 시를 썼다. ‘감자에 관한 시’라고 썼지만, 꼭 감자에 관한 시는 아니다.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남자가 자기 동료의 부모님이 감자 농사를 짓는다고 공동구매로 5kg짜리 감자 상자를 사가지고 왔다. 5kg이라면, 뭐, 얼마 안 되잖아?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는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이 남자와 사료와 캔을 조금 먹는 육식동물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감자를 먹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 하지만, 뭐, 좋아. 난 감자를 좋아하니까.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나는 어린 시절에는 내가 전생에 북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도덕 교과서 삽화 속 북한 아이들은 전부 밥 대신 감자와 옥수수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맛있는 것만 먹는데 어째서 불쌍하다는 거지? 이 이야기를 듣고 하하 웃던 한 외국인 친구는 내게 “포테이토 레이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감자에는 칼륨이 풍부하고, 칼륨은 신경 건강에 좋다. 디스크 파열과 협착증으로 신경 통증을 호되게 앓았던 나는 이 사실이 특히 마음에 든다. 디스크 방사통에 감자튀김을 처방하자고 주장할 생각은 없고, 의사들이 알면 기겁할 테지만, 감자를 많이 먹은 날에는 잠도 잘 오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물론 감자가 아니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 저절로 잠이 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칼륨이 부족하면 자칫 성마른 사람이 되기 쉬운데, 따라서 짜증이나 분노가 잦은 사람은 감자를 상용하면 노이로제를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차저차해서 나는 감자 상자가 집에 들어온 것을 기쁨으로 맞이했다. 그러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이웃들은 갖가지 이유로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좀 나누어주고 싶기는 했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옆집, 윗집, 아랫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 쑥스럽다. 나는 이 상자를 혼자 비워야 할 것이다.

감자는 사실 껍질째 먹는 것이 영양 섭취를 위해서는 더 좋다. 처음에는 껍질째 썰어서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였고, 그 다음에는 감자를 넣고 밥을 했고, 채를 쳐서 볶기도 했고, 깍둑썰기로 썰어 간장에 조리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고등어조림에 부재료로, 아점에는 감자 시금치 프리타타로, 그리고 시시때때로 찐 감자를 식탁 위에 두고 간식으로 먹었다. 감자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고안하느라 글 쓸 때 발휘해야 할 창의성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상자는 여전히 감자로 가득했다.

안되겠어. 나는 감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잔뜩 삶아 으깨서 살짝 절인 오이와 당근, 계란을 넣고 매쉬드 포테이토 샐러드를 만든다. 이것을 만들어두면 급할 때 식빵에 대충 잔뜩 끼워서 밥 대신 먹을 수 있다. 샐러드를 만들기 전 매쉬드 포테이토 상태에서 파마산 치즈가루와 전분을 넣고 납작하게 빚어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주말에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기듯이 구워 해시브라운으로 먹어도 맛있다. 또는 갈아서 밀가루, 튀김가루와 약간 섞어 감자전을 만든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비율이 잘 맞지 않으면 찢어지기 십상이다. 가장 좋아하는 감자요리는 퀘벡식 푸틴이다. 감자튀김에 치즈와 그레이비소스를 끼얹어 먹는 근사한 푸틴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 듯한 그레이비소스 만들기에는 실패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날 때마다 두어 달이 넘도록 할 수 있는 감자요리를 다 했다. 그래도 상자에 감자가 십여 개쯤 남아 있었다. 이제 그것은 다 끝낼 수 없는 숙제가 되어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상자 바닥에서 슬슬 곯기 시작한다.

다용도실 입구 옆 바닥에 신문지를 펼치고 남은 감자를 쏟아 널어두었다. 도무지 더 이상은 감자가 먹고 싶지 않았다. 담배를 태우려고 다용도실을 드나들 때마다 감자가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마감일을 넘긴 원고청탁서 같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서서히 퍼렇게 질리기 시작했다. 휴면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감자의 휴면 기간이 끝나면 싹이 나고 생장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잠자는 감자를 먹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먹는 감자는 모두 살아 있는 감자다.

감자가 얼굴도 없고 피도 하얗고 팔다리도 없어서 그렇지 살아 있는 동안 먹히기는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당신은 오늘도 일에 먹히고 밥에 먹히고 술에 먹히고 넷플릭스에 먹히고 피로에 먹힌다. 시간은 당신을 구워 먹고 삶아 먹고 갉아 먹고 발라 먹는다. 사실 물리중심주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나나 감자나 탄소, 수소, 질소, 산소와 그 밖의 자잘한 우주의 공통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감각소여를 잠깐 괄호 안에 넣으면 결국 동일한 원소들이 배치만 달리 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레고르 잠자의 간밤의 원소 재배치가 그의 얼굴과 팔다리의 모양을 벌레로 바꾸기만 했는데도 그의 식구들을 얼마나 소스라치게 했었는지! 하지만 우리는 눈과 코와 귀와 입의 노예라서 흉하고 구리고 징그럽고 흐물흐물한 것들은 그의 성분과 상관없이 미워하게 마련이다. 감각은 때로 황홀한 것이지만, 감각처럼 우리를 잘 속이는 것도 없다.

감자는 우리와 같은 감각자료를 수용한다는 그 어떤 증거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감자의 전기신호를 음성으로 바꿀 수 있다면 상자 속의 감자들이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는지, 환희의 합창을 하고 있었는지, 감자의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며 운명에 순응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혹은 각각의 감자가 자기 나름의 잠꼬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그런 걸 알게 된다면 다시는 감자를 먹을 수 없게 되겠지. 국 끓여먹으려고 시장에서 바지락을 사왔는데 봉지 째 머리맡에 두고 자다 잠결에 들은 껍질 여닫는 소리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됐던 대학원 시절 선배 생각이 난다. 역시 감자의 말은 못 알아듣는 게 좋겠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나는 상자 속의 감자를 모두 먹어 치웠다. 시간이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동안. (끝)

-<현대시> 2023년 6월호

퀘벡식 푸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