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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예수, 대심문관: 이율배반과 논리적 구원의 불가능성

* 오리너구리, 『빵과 차(茶): 무의미 이후 김춘수의 문학과 정치』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나는 이 논문을 오래된 의문으로부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떻게 순수시의 대가가 5공화국의 국회의원이 되었을까 하는, 다시 말해 「꽃」과 전두환 퇴임식 축시인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퇴임식 영상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가관이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김춘수가 쓴 거의 모든 글과 김춘수가 읽었다고 쓴 거의 모든 글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찾아 읽었다. 그랬더니 이상한 점들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거기에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궁금함이 거의 수사기록에 가까운 논문을 쓰게 만든 것 같다.

그는 국회의원과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내고 공직을 물러난 1991년, 『처용단장』을 마무리하면서 ‘무의미 시론’의 실패를 선언했고, 학교로의 복귀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마주쳐 당혹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는 도스토옙스키적 실존 의식의 비극의 장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어 온,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폭발한 스스로에 대한 의혹을 부단히 공글리며 자기 자신을 향한 고소와 연민과 반박과 변호, 항변을 쏟아낸다. 어쩌면 그가 너무 오랫동안 「꽃」의 시인으로 알려져 온 것은 시인 자신에게도 부당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는 그의 ‘논리’와 ‘도덕’이라는 어휘의 사변적 활용과 그 기적의 논리를 추적하고 이른바 ‘세다가야 서 사건’에 관한 트라우마 (재)구성 과정과 그가 즐겨 인용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추적하여, 반복되는 잘못된 인용의 자의성이 자신이 만든 “역사-이데올로기-폭력”의 도식에 대한 양가감정에 복무하는 양상을 밝히려 했다.

여기 제시한 글은 기독교의 영웅과 반영웅들—예수와 유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가 만들어 낸 ‘대심문관’--에 관한 김춘수 자신의 재현과 형상화를 살펴봄으로써 세계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갔으며 그러한 변화가 어떤 스타일의 독특성으로 드러났는지 분석한 본문 마지막 장이다.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아무도 다루지 않은 김춘수의 1954년 소설 「유다의 유서」를 발견하고 이 독창성이라곤 없는 짧은 작품이 얼마나 징후적인지 알게 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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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유다, 예수, 대심문관: 이율배반과 논리적 구원의 불가능성

 

나를 용서한다고 하지 마시오.
나를 버리시오.

카이자의 것은 카이자에게 맡기시오.
나는 저들을 끝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나도 저들 중의 하나니까요.
―「대심문관」 부분.

 

지하 생활자를 비롯한 도스토옙스키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빌려 김춘수가 다다른 비극적 인식은, 니체와 도스토옙스키가 그러했듯이 한편으로는 기독교적 신성성과 보편자를 대타항으로 두고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점을 살펴봄으로써 김춘수의 성서적 인물 해석의 변화가 그의 마지막 윤리적 태도로의 이행 과정에서 그가 행한 입장 변경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이 확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장에서 우리는 김춘수의 예수와 예수의 반(反)영웅들—유다, 대심문관—과의 동일시가 드러난 텍스트들—소설 「유다의 유서」(1954), 소설 『꽃과 여우』의 「여우의 장」 1절(1997)과 그 전신인 「세째 번 마리아」(1979), 시 「대심문관」(1997)―을 비교 분석할 것이다.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유다의 유서」와 「대심문관」에 이르기까지 일인칭 화자인 유다와 대심문관이 예수와의 관계에서 취하고 있는 입장과 태도의 변화를 통해 드러날 김춘수의 심리적 위상의 변화이다.

 

1. 마조히스트 유다의 은밀한 쾌락

 

그는 1977년에 발간한 시집 『남천(南天)』에 ‘예수를 위한 여섯 편의 소묘’라는 제목 아래 이른바 ‘예수 연작’을 상자하고 예수에 관한 에세이들을 잇달아 발표하였는데, “예수는 나에게 자꾸 주제를 강요”한다는 『남천』의 후기는 그가 오랫동안 인간 예수에 관심을 가져왔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정신에 관한 종교 철학적이거나 신학적 관점에서라기보다는 예수의 인격적 측면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가 “E 씨의 『예수전』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의 용모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허두를 떼고 있다.”고 쓴 것을 근거로, 양왕용과 김지녀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E씨의 『예수전』”을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예수의 생애』라 추측하였다.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김춘수의 집중적인 탐구는 이 무렵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그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 전후의 장면들에 관해 「유다의 유서」라는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사로 목매어 죽은지라.”라는 마태복음의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의 자살 직전에 이르는 성서 이야기를 따르고 있다. 서사적 줄기만 놓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상호 텍스트로 삼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들과 내용상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유다를 일인칭 화자로 삼아, 보편적으로 알려진 구원의 서사에서 결락된 반영웅의 심리적 고뇌와 갈등을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인용문들은 김춘수의 소설 속에서 예수와 유다의 성격과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들로, 김춘수의 후기 문학에서 주제화된 죄의식과 윤리적 갈등의 도정을 좇아온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이 소설을 예사롭게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가.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번 하였나니라. 이 말의 여운은 지금도 내 귀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폐부를 찌르는 아픔으로, 주는 나에게 처음이고 마지막인, 크나큰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그렇다, 나는 차라리 태여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번 하였다.

나. 예수께서 입 밖에 내셔서 말씀은 아니하셨지만 속으로 나의 결심(음모)을 허락하셨다. 아니, 지시하셨다.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항상 예수께서 마련하신다.

다. 너는 내게 가장 충실한 머슴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나를 팔아야 한다. 네가 네 자신보다도 사랑하는 네 이웃에게 나를 넘겨 주어야 한다. 알겠나! 그들은 빛이 너무 밝으면 눈이 어두워진다. 그들은 적당한 어둠속에서만 적당한 시력을 가질 수가 있다. 그것이 그들의 행복이다. 알겠나! 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네가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 유다! 저주받을 이름이여, 그들의 눈은 어둡다. 그들은 너를 영원히 오해할 것이다.

라. 나에게는 이제 ‘유다의 죽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주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다 주의 힘이옵니다. 화를 입은 것은 내 이름 뿐입니다. 나의 마음은 지금, 바람 잔 바다처럼 편안합니다. 모든 것은 다 주의 빛이옵니다.
주여! 거룩하신 주여

 

가.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가 자신을 배신할 사람으로 유다를 지목하면서 한 말,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번 하였나니라.”에 대한 유다의 반응이다. 예수의 이 말은 마태오 복음서(26장)와 마르코 복음서(14장)가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바로, 복음서의 기자(記者)들은 예수와 유다 두 사람 이외에 다른 제자들은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 저주로 들릴 수도 있을 이 말을 김춘수의 유다는 자신에게 은밀하게 주어진 “크나큰 위로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설은 예수와 유다 사이의 묵계가 예언을 실행하기 위해 잘 짜여진 한 편의 연극이라는 점(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사형집행 현장이 차르의 연극이었던 것처럼)과 (김춘수의 소설적 이해에 의하면) ‘가장 충실한 머슴’으로 하여금 자신을 배신하게 만드는 예수의 냉정함, 그리고 유다의 절대적인 복종을 강조함으로써, 결론적으로 절대자의 가장 강력한 대리인(도구)인 예수와, 따라서 ‘대리인의 대리인(도구의 도구)’인 유다 사이의 가학-피학적 구도에 의해 절대자의 계획—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역사’를 통해 실현되는 세계정신—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 모욕과 오명, 굴욕, 갈등을 감수하는 유다의 목소리를 상상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김춘수가 유다의 목소리를 빌려 그리고 있는 이 도착적인 서사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유다를 통해 영원한 오해를 무릅쓰고 배신자 역할을 감행할 정도로 절대자에 대한 강력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그의 유다는 ‘지나치게 복종함’으로써 ‘아버지-신’과 그의 대리자를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행 기독교’를 비판하고 기독교의 유물론적인 이해를 제안한 슬라보예 지젝 역시 『죽은 신을 위하여』의 도입부에서, 김춘수가 착목했던 이 ‘유다의 배반’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유다의 배반은 그리스도가 사명—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다는 사명—을 다하는 데에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따라서 그리스도에게는 유다의 배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가 했던 불길한 말은 유다에게 자기를 배반할 것을 지시하는 은밀한 명령이 아닌가? (...) 이러한 독해(자명한 독해—인용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배반당할 것을 슬퍼하고 있지만, 행간을 읽으면 그리스도는 유다에게 자기를 배반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최고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목숨뿐 아니라 제2의 생, 즉 사후의 명예까지 버릴 것을 요구한다).” 지젝은 유다의 배반이 키르케고르의 윤리적 실존을 넘어선, ‘종교에 의한 윤리의 중단’, 즉 “보편성을 위해 개인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의 단독적 지점을 위해 보편성 자체를 배반하는 것”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독특성은 신이, 예외 없는 동일성과 보편자로서 출현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해 “보편성이 단독성 속에서 지양되기(aufhoben)”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젝의 독해는 ‘보편성 자체를 배반’한다는 측면에서 앞 절에서 서술했던 셰스토프의 ‘이기주의 철학의 윤리’를 기독 서사의 맥락에서 재서술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 ‘이기주의 철학 윤리’의 기치를 가차 없이 선언했던 철학자 니체가 자신의 마지막 저서의 제목으로 빌라도가 예수를 가리키며 했던 말, “보라, 이 사람이다(Ecce Homo)”(우리말 번역 “이 사람을 보라”)를 선택함으로써 초인(超人)으로 하여금 예수를 대체하게 하려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혁명적 유물론에 있어 근본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지젝이 (역시 근본주의자인 자신의 동료 바디우의 『사도 바울』에 화답하며) 쓴 『죽은 신을 위하여』의 성서 해석이, 셰스토프가 니체로 추상되었다고 한 지하 생활자의 ‘세계보다는 차 한 잔’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유다의 배반에 대한 김춘수의 해석이 지젝의 그것과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어디까지나 김춘수의 유다가 보여주는 것은 그 모든 ‘연극’의 효과가 내포한 의미—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보편적 단독자의 탄생과 구원—의 강조가 아니라 유다의 도착적인 복종과 자기의식의 부재로부터 기인한 일종의 부인과 그의 상징적 자살―“화를 입는 것은 내 이름뿐”―에 이르는 심리의 전경화, 그리고 어쩌면, 절대적인 신성성-‘아버지 신’에 대한 무제한의 복종을 통한 조롱이라는 무의식의 전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젝과 김춘수 두 사람에게 해석의 욕망을 불러들이는 지점이 같은 곳을 지시한다면, 그들을 끌어들이는 유다의 배반을 둘러싼 일화들을 관통하고 있는 그 수수께끼의 핵심은 어쩌면, 유다가 (설령 악역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기이한 사실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인용문이 보여주듯이, 배신자로 선택된 유다는 이반에게 부친 살해를 고백하던 스메르쟈코프와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이미 착실하게 준비되어온 악행을 사랑하는 사람의 은밀한 허가 하에 저지르는 이 악역들은 이것이 본래 자기의 욕망이었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선택되고 허가 받았다’는 것에서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김춘수의 소설은 예수와 유다의 가학-피학적 관계와 유다의 마조히즘적 주체의 징후를, 따라서 지배적인 ‘아버지-신’의 대리자(다.의 인용문에서 예수가 유다에게 취하는 태도는 심리적 고문에 가깝다)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조롱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조히즘이 사디즘의 뒤집어진 형태라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수정·발전시키면서 동시에 두 병리적 매커니즘의 차이점을 강조한 질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마조히즘의 법-조롱적인 성격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명백해 보이는 그(마조히스트-인용자)의 복종적인 태도에는 비판과 도전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 우리 모두는 지나친 열성에 의해 법을 비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매저키스트는 순종 속에 거만함을, 복종 속에 반란을 감추고 있다. 요컨대 아이러니의 기질을 가진 새디스트가 원리의 논리학자이듯이 매저키스트는 유머리스트이며 결과의 논리학자인 것이다.” 들뢰즈는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 『심판』을 낭독회에서 읽었을 때 참석자 전원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막스 브로드(Max Brod)의 회상을 전하면서, “이 웃음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죽음 앞에서의 제자들의 웃음과 같은 묘한 현상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같은 ‘마조히스트의 비극이 자아내는 희극적 기미’는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서 김춘수가 자주 시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스타브로긴의 고백에 대한 치혼 승정의 반응에서도 보인다. “심지어 이 가장 위대한 참회의 형식 속에도 이미 뭔가 우스꽝스러운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타브로긴이 죄의식에 의해 자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정이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그의 자살이 자기 참회의 ‘희극적 측면’에 대한 자각에 있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스타브로긴은 이 같은 치혼 승정의 통찰에 “망할 놈의 심리학자!”라고 외치며 암자를 나가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인 것이다.

그 모든 예수와의 계약 행위를 충실히 이행하고 자살 직전에 있는 김춘수의 유다가 환희와 함께 마지막에 쏟아내는 신에 대한 찬미 역시, 그 모든 비극적 정서에도 불구하고 신성모독적인 조소를 유발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 작품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김춘수가 유다를 1인칭 화자로 선택함으로써 자신과 동일시했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그의 ‘역사=이데올로기=폭력’, 다시 말해 그가 정신분석학적 아버지 형상인 신-국가와의 관계 양상에 드러내고 있는 (의식적인 비극성과 무의식적인 희극성의) 이중성은, 아버지 형상의 죽음을 욕망한다는 죄의식에 대한 처벌로서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임으로써 ‘무기력한 존재로 취급당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면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김춘수의 정신적 외상으로 마지막까지 언급되고 있는 세다가야 서 사건에 관한, 시에서의 최초의 진술,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7)의 삭제된 부분을 다시 떠올려보자. 헝가리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시는, 부다페스트에서 희생된 헝가리 소녀의 죽음으로부터 한국전쟁에서의 소녀의 희생으로 연상을 이어간 다음,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은/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나는 스물 두 살이었다./대학생이었다./일본 동경 세다가야서(署) 감방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수감되어 있었다”는 기술(記述)로 이어진다. 그가 이 부분을 삭제한 것은 논리상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의 연상에 따르면 그는 부다페스트의 소녀-한강가의 소녀와 연결된 ‘희생자’에 속하지만, 자신의 고난의 출처를 소급하다 보면, 그것은 개인적인 실수→밀고한 동포(이웃)→제국→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이 명백해 보이는 가해-피해 구도의 진행 과정에 떠오른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은 ‘신의 대리인이면서 동시에 희생자’라는 이중적 위치를 차지하고 그에게 모종의 죄의식을 떠올리며 그의 굴욕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시에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그가 삭제한 26행은 자기연민으로 격하되어버린다. (그가 「처용단장」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할수록 그의 고난이 더욱더 초라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유다의 유서」를 자신의 전집이나 선집 어디에도 포함하지 않았던 것처럼,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서 이 26행을 삭제한 것은, 그가 의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이 텍스트들에서 배어 나오는 자기 연민의 굴욕적인 기미를 적어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춘수의 유다가 드러내는 마조히즘적 주체로서의 특성들과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아버지 조롱’은, 정작 이 소설을 썼던 김춘수 자신에게는 무의식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던 듯하다. 독자들에게 얼마나 분명하게 그것이 드러나건, 프로이트의 지적대로 “초자아의 사디즘은 대부분 눈부시게 의식적인 반면, 자아의 마조히즘적 추세는 원칙적으로 주체에서 숨겨져 있으며 따라서 그의 행동으로부터 추론되어야 한다”. 프로이트가 이에 덧붙인 다음의 언급은 중학 시절 갑작스러운 자퇴와 도일(渡日), 경북대에서의 ‘모자 사건’, 80년대의 정치 관여 등 김춘수의 간헐적인 돌출 행위의 수수께끼들에 대한 하나의 해답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마조히즘은 <죄가 되는> 행동을 하고 싶은 유혹을 만들어 낸다. 그러한 행위는 다음에 (많은 러시아적 성격에 잘 나타나 있듯이) 사디즘적 양심의 가책이나 운명이라는 위대한 부모의 힘 있는 질책을 통해 속죄받아야 한다. 이 마지막 부모의 대변자에게서 형벌을 자초하기 위해서 마조히즘 환자는 적절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 행동해야 하고, 현실 세계에서 자신에게 열려 있는 좋은 전망을 망쳐 놓아야 하며, 급기야는 자기 자신의 현실적 존재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

훗날, 김춘수는 유다에 관한 한 에세이에서 당대의 역사적 정황 등을 고려하여 유다의 배반에 관한 몇 가지 추론을 내놓는다. 그중 하나는 “유다는” 실질적인 사회 혁명을 꾀하던 열성적 혁명 당원이었으며, “실은 배신자가 아니라, 예수와 맞선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를 은 삼십으로 파는 것으로 자기자신을 함께 모독했다고 한다면, 유다는 더할 나위 없는 허무주의자가 되고 만다. 이런 행적은 그를 구제할 수 없는 무력자로 만들게도 된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끝내는 예수가 바라던 인간 혁명과 그 자신이 바라던 사회 혁명은 두 개가 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만 비쳤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유다의 유서」에서 가정했듯, 유다가 “배신이 불러일으킬 예수의 죽음에 대한 극적 효과”를 위한 “조역”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업(그의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는)을 돕기 위해서 그가 나타났다 사라진 느낌이 없지가 않다.”는 서술은 지젝이 유다를 ‘소실되는 매개자’라고 해석했던 바와 통한다. 그는 이 두 번째 가능성을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쓴다. “배신자의 양심의 아픔이라는 이 시퍼런 멍을 이천 년 동안이나 선량한 서민들의 가슴에 심어주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은 바로 성서의 이 대목이 아니던가? 유다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하자. 유다가 있었다고 하면 유다의 죽음도 이제는 위에서 말한 그런 서민들의 자기 구속적인 감상에서 해방시켜주어야 하리라.

정신분석학적 독해에 따라 우리는 유다에 대한 이 두 방향의 해석이, 김춘수 자신의 상징적 아버지(들)에 대한 분열된 태도로서 배태되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유다의 배반에 대한 전자의 해석은 김춘수가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의 마지막에 배치한 「대심문관」에 대한 자신의 해설과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심문관)는 극적 인물이다. 예수와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그는 예수와는 아이러니컬한 입장에 선다. 말하자면 예수와 그는 겉으로는 대립적인 입장이다. 그럴수록 어느 쪽도 어느 쪽을 무시 못한다.” 후자의 (유다가 ‘주연급 조연’이라는) 해석은 김춘수가 「유다의 유서」를 쓰던 당시 그가 유다에게 동일시하며 가졌던 “서민들의 자기 구속적인 감상”과 이에 대한 취소(선집과 전집에서 이 작품을 배제한 것)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그가 남긴 텍스트들은 마조히즘이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의 퇴행을 극복하려 시도한 흔적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2. 예수와 ‘선재’

 

70년대 이후 쓰인 김춘수의 예수에 관한 에세이들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독자들이 추체험하게 하는 특별한 연민의 정을 남김으로써 그의 많은 산문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로소 그가 예수의 인격적 측면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신’인 초자아의 대리인인 동시에 자진해서 박해받고 죽은 희생자라는 예수의 위협적 인상에서 다소나마 벗어나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그의 사후에 에세이 선집을 엮은 남진우가 “특정 종교의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적 약점을 고스란히 지닌 채 이타적 사랑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다 죽어간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관심을 집중”한 “김춘수의 예수에 대한 에세이들은 우리 산문문학이 도달한 한 수준을 보여주는 뜻깊은 성과물이라” 지적한 것은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김춘수는 이 탐구의 일부를 자전적인 부분과 섞어 예수와의 동일시를 비밀스럽게 시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논문 문제의식의 출발 지점인 자전소설 『꽃과 여우』(1997)에, 그는 2부인 「여우의 장」을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자전적이라 하기 힘든 글 한 편으로 시작한다. 이 글은, ‘선재(善財)’라고 하는 운동가로 추정되는 한 인물과 그의 동지들이 선재의 유일한 벗인 ‘정구(丁久)’의 집에 들러 환대를 받고, 선재가 정구의 두 여동생 ‘보영이’와 ‘소영이’의 대조적인 성격에 관해 사색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의 전신(前身)은 「세째 번 마리아」라는 짧은 산문으로, 수필집 『오지 않는 저녁』(1979)에 수록되어 있었다. 「세째 번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나 ‘막달라 마리아’보다는 덜 알려진 라자로의 여동생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주제로 한다. 예수와 제자들이 베타니아에 있는 라자로의 집에 머물렀을 때 라자로의 부지런한 여동생 마르타가, 좌중에 섞여 놀면서 일을 도와주지 않는 또 다른 여동생 마리아를 꾸짖어 달라고 호소하자, 예수가 “마리아에게는 마리아의 몫이 있다.”라는 말로 마르타를 도리어 타이른 일화를 예수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일화에서 김춘수는 ‘노동하는 마르타’와 ‘유희하는 마리아’라는 서로 다른 ‘인격’에 같은 노동량을 부과하는 식으로 형식적 평등을 꾀하는 일은 어리석다는 뜻으로 예수의 전언을 이해한 다음, 여기에서 ‘차이에 대한 관용’, 더 분명하게는 ‘노동하는 인간에 대하여 심미적인 인간의 몫을 인정하는 신성한 권위’를 보았던 것 같다. 김춘수는 이 주제로 시 「세째 번 마리아」(1977, 『남천』 수록)를 쓴 바 있고, 이어 「베타니아의 봄」(1993, 『여자라고 하는 이름의 바다』에 수록)이라는 더 긴 수필로 개작하는 등 이 주제에 적지 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베타니아의 봄」에서 그는 ‘일하는 마르타’의 독선을 비판하고, 이 독선이 ‘유희하는 마리아’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하는 것을 지적하며, “생산을 위한 노동만이 신성하고, 노동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성역을 형성한다. 예술이 이리하여 수단이 되고, 수단이 되지 않는 예술은 퇴폐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는, ‘생산-노동-이데올로기’ 대(對) ‘놀이-예술-퇴폐’라는 이분법으로 비약하면서, 유희로서의 예술을 옹호하는 신인(神人)을 그렸다.

「여우의 장」 1절은 바로 이 「베타니아의 봄」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들을 모두 한국식으로 바꾼 것으로, 김춘수의 많은 자기 모방작 중 하나이다. 예루살렘의 혁명적 열기와 베타니아의 평화로움을 비교하는 문단 하나를 삭제한 것을 제외하면, 「여우의 장」 1절은 고스란히 「베타니아의 봄」을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바로 마지막 부분이다. 두 작품의 결말 부분을 비교해 보자.

 

예수는 몇잔 포도주도 마시며, 그날 나자로가 권하는 대로 맛있게 식사를 오랜 시간을 담소하면서 즐겼다. 그 자리에는 마르다와 마리아도 함께 있었다.
- 「베타니아의 봄」 결말 부분.
선재는 한 사발 막걸리를 마시며 그날 정구가 권하는 대로 맛있게 식사를 오랜 시간을 담소하면서 즐겼다. 그 자리에는 소영이와 보영이도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 다음날 읍내에서 터졌다. 읍내로 발을 들여놓자 동지 중 한 자가 선재를 밀고했다. 선재가 운동가라는 사실과 그가 짜고 있었던 엄청난 계획을 고해 바쳤다. 선재는 관헌에게 붙들려가고 영어의 몸이 됐다. 동지들은 그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선재는 마침내 처형됐다.
선재의 육신은 가고 선재의 뜻만 홀로 어딘가에서 그나마 숨쉬며 살아 있다고 하지만, 선재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가 아직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재는 누구일까?
- 「여우의 장」 1절 결말 부분.

 

두 번째 인용문에서, 김춘수는 「베타니아의 봄」과 고유명사만 바뀐 동일한 결구 뒤에 선재의 체포와 처형을 간략한 사건 개요만 제시하며 선재를 급히 환상적인 인물로 만들어놓고 있다. 마지막에 쓴 “선재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은 누구를 향한 질문일까? 이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성서에 낯설지 않은 이들이라면 대개 알 만한 일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고, 예수를 일견 당대의 정치적 인물로 보는 것도 딱히 특이한 해석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예수의 ‘미학 옹호자’로서의 측면을 세밀하게 제시하고 나서, ‘밀고에 의한 정치적 죽음’을 짧게 요약해 덧붙인 것은, 이제까지 예수에 대한 해석에서 미학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혹은 예수에게 씌워진 혐의가 부적절한 것이었음—따라서 미학적 인간의 정치적 죽음의 부당함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던 듯하다.

그는, 장소를 한국으로 옮기고 간략한 사건 개요를 적고 나자, 이것이 너무나 자주 편재했던 역사적 일화의 하나로 읽히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다시 말해, ‘성서’라는 위대한 보편적 텍스트의 보편적 특이성—그 텍스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세계 어디에서건 이미 현재하고 있는 일이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혹, 이 보편적 특이성을 간직한 사건이, 실은 ‘나에게도 일어났었다’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자전소설’에 개작, 삽입한 것은 이 사실을 조심스레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선재는 마침내 처형됐다.”라는 부분은 ‘나는 그때 죽었어야 한다’라는 굴욕감과 죄의식의 표현이 되지 않는가? 그것이 세다가야 서 감방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이 “불면의 밤,”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한다고 썼던 이유가 아닌가? 그러니 그것은, 동시에 ‘나는 그때 죽었다’라는 무의식의 고백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선재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은 독자에게 던지는 너무 쉬운 뻔한 수수께끼일 수 없다. 오히려, 김춘수가 그 자신의 무의식에 대해 던지는 질문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 숨겨진 무의식적 의미는 ‘그때 죽은 너는 누구일까?’와 ‘그때 죽었어야 하는 너는 누구일까?’라는 중의적 질문이 된다. 그는 육체적 고통에 취약하였으며, “아주 초보의 고문에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은 하지 않은 일도 그들(헌병)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일을 한 것처럼 불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허구와 실재가 뒤얽히고 성서와 자신의 전작(前作)을 넘나드는 이 텍스트에서 어쩌면 그가 자신을 ‘선재’가 아니라 ‘선재’의 “동지 중 한 자”라고 여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왜 그가 과거에 그토록 유다에게 감정을 과다하게 이입했는지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제 적어도, 문자라는 상징계적 규약 속에서 소설이라는 관습적 장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예수와 섞어 ‘선재’라는 인물로 형상화하고, 그를 응당 그렇게 돼야 했었던 것처럼 처형함으로써,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부채 탕감을 상징적 의식(儀式)으로나마 치른 셈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3. 예수에게 차를 권하는 대심문관

 

1954년, 유다를 화자로 삼아 지나친 복종으로 자신을 죽여 차가운 ‘아버지-신’의 대리자에 대한 사랑(과 조롱)을 보여준 김춘수는,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아버지-신’의 대리자를 인간적으로 탐구하고 동일시를 시도함으로써, 그를 미학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인류의 뉘앙스”로서 신비롭고 자애로운 ‘아들-신’의 면모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서 자신의 자전적 삶을 잠정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하는 1997년, 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가장 핵심적인 장 중 하나로 꼽히는 「대심문관」을 상호 텍스트로 삼아, 시 「대심문관」을 자전소설과 함께 펴낸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다.

본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에서 「대심문관」은, 이반이 신에 대한 애증을 간직한 채 동생 알료샤를 만나 들려주는 자신의 서사시의 내용으로, 이교도에 대한 처형이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었던 15세기 스페인 세비야에 재림 예수가 나타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따르자 추기경(대심문관)이 예수를 투옥하고 그에게 자신이 평생 품어왔던 불만과 현실 논리를 풀어놓는 내용이다.

이반의 서사시가 복음서 상에 기록된 예수의 ‘광야에서의 유혹’을 중심으로 ‘빵과 권력, 자유’의 문제에 대해 기독교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다루고, 이 간극을 껴안고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대심문관의 고뇌와 항변을 그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김춘수의 시는 이 주제들의 대강을 그대로 패러디하면서도 다소 주변화하면서 개인적인 항변과 우수(憂愁)를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이 제도로서의 기독교가 민중에게 ‘끝없는 기다림’을 약속함으로써 체제의 붕괴를 막고 있음을 항변하는 논지는 다음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마침내 그들은 자유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넘쳐날 만큼의 지상의 빵이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자기네들끼리 그것을 분배할 능력이 없는 족속이니까! 또한, 결코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는 점도 확신하게 될 텐데, 왜냐하면 그들은 나약하고 악덕하고 하찮은 반역자들일 뿐이니까.”

 

이 서사시는 대심문관의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나는데,

 

“내일이면 너는, 내가 손끝을 까딱하기가 무섭게 네가 우리를 방해하러 왔다는 이유로 너를 태워 버릴 저 장작불에 뜨거운 석탄을 집어넣기 위해 달려들 저 온순한 양떼를 보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의 장작불로 태워 버릴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니까. 내일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 Dixi(내 말은 끝났다).”

 

이반은 알료샤에게 이 서사시의 대안적인 결말을 덧붙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이렇게 끝내고 싶었어. (...) 노인은 상대방이 씁쓸하고 무서운 말이라도 좋으니 무슨 말이든 좀 해 주었으면 싶었어. 하지만 그는 갑자기 말없이 노인에게 다가와, 아흔 살 먹은 그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추는 거야. (...) 그는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그에게 말해. ‘어서 가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라...... 두 번 다시 오지 말란 말이다...... 절대로, 절대로!’라고. (...) 죄수는 그렇게 떠나가.”
“그럼 노인은?”
“입맞춤은 노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예전의 이념을 고수하는 거지.”

 

이 서사시 속의 사건은 사실 이전 사건―15세기 전의 십자가 사건—을 패러디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심문관이 군중의 요구를 대신하여 사형을 명령한다는 점에서 군중의 죄책감을 대신 짊어지는 희생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여지까지도 있다. 그는 체제 유지를 위해 매일 수많은 이교도를 처형하고 있지만, ‘그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에 의심이 없는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그려져 있다. 대안적인 결말에서도 대심문관의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입맞춤’이라든가, 처형 대신 방면이라는 다른 선택지를 통해 그의 심한 갈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대심문관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이반 자신의, 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의사가 없는 무신론의 깊이를 보여준다.

김춘수의 「대심문관」은 이 두 번째 결말을 채택하여 쓰였다. ‘입맞춤’ 장면을 그리지는 않았으나, 예수를 풀어주고 “꼿꼿한 자세로 천천히 무대 밖으로 걸어나간다.”는 결말은 “여전히 예전의 이념을 고수하”는 이반의 대심문관과 같이 이제까지 고수해온 대심문관 자신의 역설적이고 운명적인 역할(‘저들’을 위하여 ‘저들’을 속이고 체제를 위하여 신의 이름으로 신을 버리는)을 취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대심문관은 이반의 대심문관보다는 한결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김춘수의 대심문관은

 

왜 또 오셨소?
(...)
역사는 끝났다고
아니
역사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고
한 번 더 알려주려고
당신은 다시 오게 됐지요?
저들
할렐루야 할렐루야 부르는 저들을 위하여는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가고 있다고 하는 눈 딱 감고
헛소리를 해야 했소.

 

라고, 역사 허무주의적인 시인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나자로를 깨나게 한
당신,
나는 알고 있소.
그건
인류의 자존심 때문이다. 라고,
(...)
저들은 기적이라고 하고 있소.
기적이 어디 있나?
당신에게는 사랑이
오직 사랑이 있었을 뿐인데.

 

라고 다소 감상적으로 쓰는가 하면, 다음 순간 무지한 ‘저들’의 처지를 옹호하는 계몽주의적인 연민을 보여주고, 다시 혼잣말로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에 등장하는 ‘의식 과잉의 무신론자들’을 원망한 다음, “내가 뭘 잘못했소? (...) 나는 좀 전에/저들 중 몇을/처형,/목을 잘랐소.”라고 죄의식과 자기방어를 뒤섞어 자문자답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를 용서한다고 하지 마시오./나를 버리시오./카이자의 것은 카이자에게 맡기시오.”라는 그의 말은 이반의 서사시에서보다 사뭇 단호한 울림을 준다. 그것은 ‘입맞춤’을 비롯한 모든 연민을 거절하는 제스처이며, 이에 덧붙인 “나는 저들을 끝내/용서하지 않을 것이오./나도 저들 중의 하나니까요.”라는, ‘저들로서의-나’에 대한 고백은 김춘수 시에서 보기 드문 공동 존재로서의 자아의 수긍이고, ‘용서’의 최종심급이 (대타자-신이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최종 선언이다. 아울러 대심문관이 ‘신과 대등한 유한자’로서, 투옥된 예수에게 차를 권하는 장면은 이제까지 지속된 김춘수의 실천적 보편성과 취향, 다시 말해 보편주의적 도덕과 그에 항변하는 미학의 사적 성격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을 보여준다.

 

사동이 찻잔을 받쳐들고 들어온다. 대심문관은 저분께도 차 한 잔 드려야지, 하며 사동에게 이른다. 사동은 나가서 곧 차 한 잔을 다시 받쳐들고 들어온다. 감방의 창살 사이로 찻잔을 밀어넣는다. 그러나 감방 안의 예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동안 대심문관은 차를 천천히 음미한다.

 

레제드라마 형식으로 쓰인 이 시의 지문에서 ‘차’는 중요한 소도구로 작용한다. 대심문관은 말 없는 예수와의 대화 내내 기침하며 차를 마시고 있다. ‘세계보다는 차 한 잔’이라는 지하생활자의 신경질적인 외침을 떠올리면, 대심문관이 차를 권하는 장면은 자신의 현실주의적 향유를 나눌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는 호의의 제스처를 나타내는 동시에, 현실주의자의 애정은 현실주의적 대상과 방식으로밖에는 시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현실주의적 향유를 사이에 두고 제시되는 예수와 대심문관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세계를 염두에 둔 보편성 속에서 취향이라는 심미적 쾌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같은 보편성에 대한 예의와 존경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김춘수는 최종적으로 “이승의 저울”, 곧 샤르코가 말했듯이,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전혀) 누락하지 않기를 택하는 것이다. “그(대심문관-인용자)는 예수와는 아이러니컬한 입장에 선다. 말하자면 예수와 그는 겉으로는 대립적인 입장이다. 그럴수록 어느 쪽도 어느 쪽을 무시 못한다.”는 그의 말은 오랫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던 이원론적 세계관의, (‘해결’이 아니라 ‘해결 없음의 수긍’이라는) 종착지를 표시한다. 그는 자신의 오래 묵은 아버지-신에 대한 양가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자와 대등한 지위로 정위된 유한자로서, 지금 막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혹은 대질, confrontation)을 마친 것이다. 어차피 이 대질은 그의 ‘있음’의 이유에 관한 존재론적 문제와 ‘-임’의 이유와 당위에 대한 실천적, 도덕적 문제의 착종과 모순(‘있음’과 ‘-임’ 각각에 대한 대답 자체가 다른 질문의 조건을 구성하게 되므로)에 대한 해결보다는 감정의 상호 확인을 통해 갈등을 중지하는 것을 최상의 결과로 삼는 수행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야말로 바로 이 수행을 통한 이행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끝)

-<시와 시학> 2021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