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가 장난이나 한번 쳐볼까, 하고 모였던 것은 지난겨울의 일이었다. 나는 거의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방식으로 (아니, 운명을 가장한 우연의 방식인가?) 그와 함께 동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동인 활동이란 건 대체 무엇인가? 한 30년 전쯤이라면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문학적인 대의명분이라도 있었겠지만, 시의 시대도 지나가고, 가시적인 적들의 적성(敵性)은 단물처럼 대기에 비가시적으로다가 녹아들고, 나름 교체된 정권도 한동안 살아보고, 지금은 상냥한 얼굴로 뒤통수를 쳐대는 교활한 적의 품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그래서 결론적으로 온갖 고민들이 문화적인 형태로 세련되고 교양 있는 취미의 자원을 이루게 된 지금, 21세기 시작하고 한 10년 지난 다음에 축구단이나 야구단도 아니고 동호회도 아니고, 이미 글 쓰는 자들끼리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글쓰기로 의기투합을 할 때에는, 뭐 그럴듯하게 보일만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듯한 이유를 나는 댈 수가 없다. 그럴듯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모욕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외로웠다. 온갖 이유들을 다 생각해보아도 가장 큰 이유는 이 외로움이었다. 와우,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다가 쓰고 나니 쪽 팔리고 아프지만, 그랬다. 사람 새끼로 태어나 오롯이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궁굴리면서 죽을 때까지 사람 새끼로 산다는 일이 뭘 한다고 덜 외로워질까마는, 유독 고독을 동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일을 선택했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든 혼자 장난치는 일의 외로움을 공유할 동지들이 필요한 법이다. 뭐? 고독한 개별자? 창 없는 모나드? 각개격파? 아무리 멋들어진 말로 장식해봐야 지질한 외로움이 싹 가시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혼자 지랄하느니 여럿이서 지랄하자. 그러면 덜 쪽 팔릴지도 모른다. 이걸 연대라 하든 협력이라 하든, 분명한 건 이편이 조금 더 재미있다는 거다.
서효인을 본 적이 있는가. 그는 다 큰 짱구처럼 생겼는데, 웃을 때면 쌀집 아저씨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웃는 얼굴로 하는 얘기들에서 맘씨 좋은 쌀집 아저씨의 친절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그는 악동과 꼰대와 변태 사이를 간단히 오간다(산문, 「내게 시는 너무 써」). 모범생과 날라리의 차이를 무화시킨다. 그는 대체 어떤 시점에 시를 쓰자고, 그러니까 가장 진지한 날라리가 되자고 결심하게 되었을까?
“중3때 나는 삥 뜯기, 아리랑치기, 술 먹기, 화투, 당구 등에 빠져 있는 불량한 학생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능력별 수업 경쟁 체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국어, 사회 성적 때문에 근근이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생들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때렸다. 내가 C반에서 B반으로 올라가자 그제야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문(文)’의 필요를 깨달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배치고사에서 국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다. 국어 숙제로 자서전을 써가자 국어 선생은 내게 문예부 가입을 제안했다. RCY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설득 당하고 문예부에 들어갔다. 전교생 앞에서 백일장 상을 받고 나자 용기백배했다. 최하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성적을 올리고 나니 선생들이 예뻐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 때리거나 맞는 데에 익숙했던 생활로부터 문학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로 가게 되었다고 느낀 나는 완전히 문학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오바하며 살았다. 당시 같은 반이었던 소설가 정용준을 만나 문학의 허세를 보여주었다. 전남대 국문과에 가서 잠깐 방황하다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장르를 정했던 건 아니지만 글 쓰는 자로서의 자의식은 고등학교 때 만들어진 듯하다. 이상한 일이다. 어릴 때는 시 때문에 내가 올발라진 듯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시 때문에 삐뚤어지고 있다. 큰일이다.”
때문에 그의 시집은 성장기의 순서를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중요한 과거는 언제나 현재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대개 유년 소년 청년을 한꺼번에 살며 구성되지만, “독자들이여, 나는 이렇게 ‘삐뚤어진’ 청년 시인이 되었다”고 보여주려면 그 모든 계기들을 재정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불량한 소년을 제법 올바른 청소년으로 이끌어주었던 그의 시 쓰기는 그에게 인정투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보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가 장정일과 박노해를 애독했다고 말할 때, 그는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도 진즉에는 자기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불우함을 동력으로 삼고 진행되는 생짜의 감각들. 이를테면, 그가 “나는 리얼리즘 시인이다, 그런데 선배들이 나더러 자꾸 모던하다고 하니 당황스럽다”는 거의 21세기적이지 않은 발언을 대놓고 할 때, 나는 그의 리얼리즘을 그 생짜의 감각들로 읽는다. 그 생짜의 감각들을 시로 제조하는 과정은 어떨까?
그가 시집에 수록한 시들 중에는 발표 당시와는 제목이나 내용이 대폭 달라진 것들이 많다. 어떤 것들은 버려졌다. 「버펄로씨에게 보험 처리된 바퀴들의 오후」나 「바람:물질 친구들」 같은 시들은 아예 수록되지 않았고, 도사견에게 먹힌 소년을 다룬 「그만해 제임스」는 구체적인 정황 정보들을 은닉하면서 「비닐하우스」라는 보다 모호한 시로 탈바꿈했다. 「지켜보고 있다」나 「일어서 건담」도 그런 경우다. 소재인 사건 자체보다 작품으로서의 시 텍스트를 독자에게 펼쳐 보이려는 욕망이 개입해 있는 것일까? 자칫 소재주의로 빠질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사건 자체에 함몰될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처음에는 독자들에게 이해될 수 없을까봐 걱정이었는데, 일단 초고를 완성한 후에는 너무 잘 알게 되면 어떡하나 싶은 염려가 들었다. 「지켜보고 있다」는 문구점에서 도난 방지를 위해 생체 CCTV역할을 하는 직원, 「일어서 건담」은 하루 종일 서 있는 마트 직원들에 관한 시다. (건담 동호회에서 온라인 게시판에 내 시를 올려놓았더라.) 그러고 있으니 ‘슈퍼마리오 마씨’는 망할 수밖에. 나는 시집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거기에는 떨어져 죽은 인부도 있고, 커피 배달을 가다 사고 당한 레지도 있고, 마트 직원, 슈퍼 주인, 토스트 굽는 부부, 독거노인도 있다. 이들이 모두 미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를테면 「더블린 사람들」 같은, 알고 보면 모두 관련 있는 동네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특히 이런 아이디어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대학 무렵에 당구장에까지 들고 다니던 들뢰즈의 책들로부터 왔다. 리좀이며 뿌리-줄기 같은 개념들에서 얼기설기 상호 연관된 시들로 지어진 하나의 도시를 상상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시집-마을의 일원들을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뭔가 우월한 자처럼 일괄하며 쓴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면 가차 없이 버렸다.
시집에 수록할 때 시들은 많은 수정을 거쳤다. 시집 표제작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은 원래 열 편 가까운 연작이었다. 그 시들이 이 시집의, 말하자면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고래를 잡는 아이들을 위한 안내서」의 원제는 「떠나는 엄마를 잡는 아이를 위한 안내서」였다. 다섯 살 즈음 엄마가 가출하는 장면을 자는 척 몰래 목격한 장면에 관해 쓰다가, 고래들이 잔뜩 등장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첫 장면과 일종의 혼종이 일어났다. 후에 ‘엄마’라는 단어를 모조리 ‘고래’로 고친 것이 지금의 시가 되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섬에 있는 외갓집에 맡겨져 있을 때 외삼촌은 내가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나를 나무에 묶어두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쏟아져 나오던 <싱글벙글쇼>. 돌아온 엄마는 이상하게도 아주 열정적으로 내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언어의 원초적인 장면에는 ‘섬’의 이미지가 아주 강하다. 고기도 잡고 농사도 짓는 가난한 섬. 섬 그 자체는 빠져버렸지만.”
음, 그의 시에 비린내, ‘흐르다’, ‘흘리다’ 등의 단어들이나 해산물 등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일까? 혹은 이런 추측은 어떠할지? 그의 시는 언제나 풍자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억눌린 분노는 난지도에 공원으로 덮어놓은 버려진 온갖 것들로부터 흘러나온 용출액처럼 오랜 시간 압착된 결과 시집 도처에서 흘러나온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래, 얘기가 나온 김에 이 분노와 그의 눙치는 재주에 관해 더 이야기해 보자.
“나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화난 사람이 ‘나 화났다’고 말해봤자 바보가 될 뿐이다. 「분노조절법」 연작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스트리트 파이터, 선생의 폭력, 그걸 졸업하는 과정. 그런데 졸업 후에 난 정말 안 맞고 있는 걸까, 실은 사회로부터 더 많이 맞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고개를 쳐들었다. 계층, 권력, 이런 거 다 떠나서 사회 내에서 개개인들은 모두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자들이었다는 느낌. 학창시절에 그 폭력이 신체적이었다면 졸업 후에 그것은 어느덧 덜 물리적이지만 여전히 뒤통수 때리고 후려치는 개인과 개인, 사회와 개인 사이의 구조적인 폭력으로 바뀌어 있었다. 때리고 맞는 게 너무 무서웠다. 맞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귀를 뀌나? 박자를 엇나가나? 반칙을 하나? 결론은 내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항상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 대 폭력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를 산화하면서 일으키는 방식들에.
나는 사람들 웃기기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다. 웃긴 얘기를 웃기게 쓰는 건 하나도 안 웃긴다. 슬픈 걸 슬프게 쓰기, 즐거운 걸 즐겁게 쓰기는 안 재밌다. 뭐라도 웃음 코드가 있어야 내 맘에 든다. 할아버지가 이야기꾼이었다.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 또 하나는 신파에 대한 거부감이다. 서정시가 개인의 슬픔에 함몰되면 그것은 미학도 정치도 아닌 것 같다. 내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한다고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균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을 타자로 호명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자꾸 보내다 보면 그게 언제 파시즘으로 변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내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건 그런 얘기다.
실제로 나는 도시를 설계하려고 했지만, 설계가 생각만큼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을수록 잘못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것들을 처리하는 것은 슬픔보다는 분노, 절망보다는 블랙유머다.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지, 뭐’라고 생각하니 편해졌다.”
그러니까 그의 분노는 무엇보다 먼저 폭력에 대한 분노다. 폭력과 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80년대가 떠오른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80년대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서효인은 ’80년대 산(産)인데, 그러니까 ’80년대에 그는 청소년조차도 아니었는데 좀 특이하게도 당시의 시대적인 파토스에 공명하는 데가 있다. 나 또한 ’90년대 초반에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80년대 시의 세례를 받고 좀 시대에 뒤떨어졌던 터라 남 이야기 같지 않다. 특별히 그 시대에 공감한 ‘젊은’ 시인의 시가 그에 대한 반향을 「잭슨빌의 사람들」 같은 시에서 발설할 때 나는 이즈음 문화를 경유해 강력하게 회귀하고 있는 어떤 주제를 생각한다. 그건, 이를테면 장정일이 20여 년 전에 『서울에서 보낸 3주일』에 해설 대신 실었던 자신의 글에서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당대의 (그 자신에게 가장 잘 적용될) 넘치는 파토스와 종말론을 낭만주의라 비판할 때, 그 볼멘소리에 섞여 있었던 무시할 수 없는 애증과 거기에 녹아있는 어떤 요구에 관한 것이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서효인은 자신의 시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할까? 내 말은, 의식적으로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광주에서는 정확히 6`15 공동선언 이후 가투가 사라졌다. 대학 선배는 3년 안에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는 할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의 과거가 부럽기도 하고 공감도, 인정도 바라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 나는 내 삶의 살갗에 스크래치를 내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좀 더 나아가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잘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세대의 정치에 대한 태도? 그런 게 있을까?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음 대통령을 예상하는 한 설문조사에서 박근혜는 늘 1위다. 이게 우리 세대의 정치적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는? 내 시는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정책과 정치를 헷갈리는 것 같다. 정책 하나 하나에 반대하는 것으로 문학이 정치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문학에 그만한 파급력이 있기나 한가? 김제동이 트위터에 한번 올리는 게 영향력이 더 크다. 각 시인이 각자 자기의 시를 쓰고 싶은 대로 쓰면서 자기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 정치적 태도를 표명하고 싶으면 시에 표명하는 것,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굳이 내 의식적인 정치성이라 한다면, 시집을 반드시 5월에 내고 싶었다는 것 정도? 어쩌면 무의식 속에 각인된 88년 5공 청문회의 인상에서 비롯된 폭력에 대한 적대감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충장로에 놀러 다니던 청소년 시절에 그런 일들이 벌어진 장소를 밟고 지나간다는 사실이 항상 이상했다. 김남주는 김남주 식으로 쓰는 거고 나는 내 식으로 정치색을 드러내는 거다. 그러면 된 거다. 시는 어차피 비인기 장르지 않은가. 시가 가진 정치성이 지금은 이 정도인 거 아닐까.”
하지만, ‘리얼한 선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동시에 있었던 거 아닌가? ‘내 시는 너무나 리얼한데 왜 자꾸 모던하다고 하는 건가’고 물을 때?
“물론이다. 강하게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에게는 이미 수정할 수 없는 어떤 패러다임이 이미 있다. 난 선배들이 부럽다. 명료한 적이 있었다. 윤상원은 전대를 나와서 종로에서 은행을 다니다가 광주로 귀향해서 야학운동을 하다 5`18 때 죽었다. 지금 그런 일이 가능할까? 선배들은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상대적으로 삶 자체는 지금보다 안정적이었다. 지금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백수의 삶을 준비한다.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더 높고 그만큼 위험이 더 많고 더 깊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전 세대의 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어딘가 결례라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세계를 구성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시가전은 피투성이가 아니며 우리의 적은 (우리의 신과 마찬가지로) 모호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사회 구조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의심하는 데도 대단히 능하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집결하는 대신 산화하는 방식으로 맞선다. 대부분의 경우 적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는 적들의 공모자다. 가령, “마스크 X의 얼굴은 패션 아이템이 되”고, 급기야 “국가에 대한 거대한 방정식의 정답으로 판명, 괄호 속으로 붙잡혀갔다”는 소문이 도는 이 마당에 “나는, 누구지?”(「마스크 3」)라는 질문 속에서 계속 무덤을 파는, 이런 상황을 뭐라 해야 할까. 마스크 X는 자기의 노동과 자신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이라는 상품으로부터도 소외되고, 무엇보다 끝내 그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마저 소외되고 만다. 아니, 그는 애초에 정체성이라는 것을 가질 자격조차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이성복, 「그날」)던 30년 전의 진단은 문화적 풍요를 거쳐 웃음을 입고 돌아온다; “노래방에 불이 났다. 조선족 도우미가 살고 건설 업체 중역은 죽었다. 모텔에 여중생이 감금됐다. 의사가 몸을 사고 언니가 8만 원에 팔았다. 도우미가 입술에 화상을 입고 여중생은 입천장이 헐었다. 마스크 안에서 그들은 말짱하다.”(「마스크 3」) 아, 이건 이미 종말을 지나온 천년왕국인가? 서효인 식 ‘천년왕국을 사는 법’은 무엇일지?
“다르게 살 방식이 없다.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은 구원을 줄 수 없고 태도를 보여줄 뿐, 전망을 내놓을 수도 답을 줄 수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그들에게 안 부끄러울 만큼 살자, 그 정도의 윤리는 지키자고 생각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왜 너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느냐’고 하는데, 잘 봐라. 거기 다 내가 들어있다.”
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방식으로 창조한 현실에 대해, 그리하여 그 각각의 시, 각각의 정황, 사건, 맥락 속에 살림을 차린 주체들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아니, 곰곰 생각하니 이것, 상당하다. 그의 윤리는 저기 관념적인 약자, 빈자들이 아니고 제가 보듬어 밤새 골몰해 제 일부와 함께 용해해 추출한 여러 다른 자기 자신‘들’에 대한 충실이다. 그것은 자기에게서 나왔으되 더 이상 자기가 아니고, 자기가 아닌 자들에게서 왔으되 남이 아니다. 그의 시는 그가 남들과 살을 섞는 자리였구나. 이렇게 은밀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니 그들을 ‘타자’로 호명하면 안된단 말이다. 그건 모욕이고 결례란 말이다.
그러면 주민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는 그의 시를 읽다가 「폭소」, 「웃어 봐, 프레이저」, 「마스크 1」 같은 시들이 계열체로 읽힌다는 점을 발견한다. 특히 「웃어 봐, 프레이저」와 「마스크 1」에서 무하마드 알리나 헐크 호건은 ‘무대 위의 승자들’이기 이전에 같은 극본 내에 이미 있다는 사실 때문에 프레이저나 마스크 X와 심리적인 연대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상황 속에서라면 우정을 쌓을 법도 한 사이일 수도 있었을 것처럼 여겨지기는 것이다. 「폭소」의 배삼룡과 구봉서처럼. 그것은 과거에 불과한 것일까. 말하자면, 배삼룡과 구봉서의 진한 우정은 이제 불가능한 것? 동지는 간 데 없고 경쟁자만 남은 건가? 반칙마저 정해진 스타일이 각본에 제시되어 있는 프로레슬링의 무대에서 마스크 X의 ‘사인이 없는 돌발적 상황’이란 말하자면, ‘진짜 반칙’을 보여줌으로써 이제까지의 반칙이 모두 쇼였음을 폭로한다. 반칙, 변칙, 혹은 박치의 미필적 고의. 체제와 개인의 구도로 보면 반체제적이지만, 인간과 인간으로 봤을 때는 이중적인 어떤 애증 같은 것이 보인다. 그러니까, 구조상의 적대자에 대한 연민 같은 것.
“개인과 개인의 역할놀이를 깰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마스크 X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가면을 벗어버리는 일 말이다. 내 시 속의 루저들이 죽거나 다친 것은 다 구조 때문인데 개인들이 구조를 부술 수 있는가? 거듭 부수는 놀이가 재미있을 수는 있지만 마스크 X처럼 자본에 포섭되는 식으로 자꾸 결론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나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반칙, 변칙, 엇박은 재미있기는 한데, 이것들이 한 방향으로 모여 발전적이 될 거라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분간 그 언저리에서 방황 중이다.”
모든 충실한 방황은 끝내 길을 만들지 않겠는가. 그 길이 발전적일 것인지를 묻는 것은 무례한 짓이 될 것이다. 그것의 의미는 시를 통한 인류의 정신사적인 진화론을 두둔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팎의 들끓는 관계에 대한 충실성에 바탕을 둔 수행에 있으니까.
나는 첫 시집을 낸 나의 시인 동지와 마주 앉아 너무 거대할지도 모르는 진지한 이야기들을 오래 늘어놓은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칫 지나치게 심각해져서 핵심을 놓치게 될 순간이면 언제나 예리한 통찰력과 특유의 유머로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축제 분위기 음악을 들으며 사람 죽어나가는 시를 쓰면서, 50분 쓰고 10분 쉬면서, 쉴 땐 아이돌 음악을 들으면서, 안 써지면 걸그룹 노래를 듣고 소설을 읽으면서, 끝끝내 안 써지면 시와 상관없는 곳에 정신을 팔면서”, 그는 자신의 시들이 “쾌활한 상상력에서 온다기보다는 주의산만함에서 온다”고 말했지만,
나에게 그의 휴식과 놀이는 유연한 집중의 단서들처럼 보인다. 모든 주의집중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해답을 내놓게 마련이다. 진짜 반칙은 계산되는 게 아니니까. 그는 언젠가 문학 덕택에 올발라졌고, 또 지금은 문학 탓에 점점 더 삐뚤어져간다. 삐뚤어진다는 것은 저 자신을 키운 사회의 언어가 거짓말일 가능성에 매달리는 일. 그는 자기가 배운 분노와 웃음을 자기 식으로 돌려주기 시작한다. 큰일이다. 저 자신 채무자이자 동시에 채권자인 한 남자가 고백 같기도 협박 같기도 한(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갈은 자해공갈이다) 이런 말을 할 때엔, 일단 호주머니를 뒤져보는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는 이제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빚을 갚으라고,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고(...)말장난이거나 노래이거나 저는 세상에서 몇 단어를 빌려 왔고 이제 와 갚지 않으면 손가락이 잘려 나갈 것을 잘 압니다. 그것이 리얼, 이니까요.”(「수전노 솔레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