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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작품론

밥숟가락과 봉분 사이-발바닥들의 운명

물든 생각

 

이사라

 

수천 년 물들여진 염색공장 가는 길은

좁고 구부러진 골목들로 이어집니다

이런 골목들은 미로를 낳고

미로는 언제나 생각을 낳습니다

 

오랜 가난이 묻어나는 그 길 가는 길에

어린 일꾼들이 할당된 오랜 슬픔을

염색하고 있습니다

슬픔의 장치는

염색물이 고인 벌집 구덩이들처럼 꿈틀댑니다

피부를 뚫고 가슴 속에 자라나는

벌집 같은 기억들도 염색되는지

창공에 널리는 것들 모두

골목의 그늘을 비의(悲意)처럼 드리우고

미로를 지나갑니다

여인의 손아귀 속에 손목 잡힌 저 아이도

미로 속 골목의 아이로 자라서

금새 한 몫을 하는 일꾼으로 염색될 것입니다

 

색색으로 물든 빛깔을

햇살에 너는 것을 보면서

염색공장 가는 길에

나는 자주 자주 멈추어 서서

길마저 염색되는 지표(地表)에 관한 생각들을 건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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