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 context

한재범, 교환일기

 교환일기

 

                                         한재범

 

 

 모두가 이 이야기를 안다

 

 이른 새벽마다 매일 교실 문을 열던 선배가 겪은 일 평소처럼 커튼을 열었는데 창가에서 유령이 나왔다는 이야기

 

 유령의 발처럼 가벼운 이야기를 아이들은 좋아하지 그 선배 같은 아이는 해마다 반에 한 명씩 있으니까

 

 커튼을 열면 유령이 나올까

 그런 기대감에 매일 새벽 등교를 했는데

 

 어느 날은 네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어두운 교실에 들어와 커튼을 연 후에야 너를 발견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엎드려 있던 너를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는 없어

 네 옆에 놓인 작은 노트를 펼쳤다

 

 “아래층 할머니 잘 살아있을까 언젠가부터 아무리 뛰어다녀도 시끄럽다고 올라오질 않았지 이젠 뛸 사람도 없을 텐데 엄마는 아직도 베란다에서 나무를 기를까 동생은 여전히 몰래 베란다에서 담배를 필까

 모두 다 나 때문일까

 언제쯤 난 내가 익숙해질까“

 

 노트에 담긴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속이 울렁거린다 책상에 올린 너의 뒤통수에다 자꾸만 토를 하고 싶다

 

 사물함에 오래 놔둔 우유처럼

 모서리가 찡그러진 너와

 

 내가 있는 교실이다 뒷문이 자꾸만 열리는 교실이다 우리에게 뒷문만을 허용하는 교실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분과

 

 머리 위로 죽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낡은 책상과 의자가 있는 교실이다

 

 복도의 발자국 소리에 커튼으로 몸을 숨긴다 잘 숨을수록 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된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못할 것이다 죽어서도 학교에 오는 다른 선배들처럼

 

 뒤늦게 들어온 아이들이 우리 자리에 앉아 지겨워한다

 

* 한재범 2019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인동네> 2020년 01월호 통권 8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