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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11 가을 * 우선 신인상을 받은 시인 최예슬의 등단작들 중에서 한 편; 비밀의 왕국 최예슬 먼 옛날 비밀이라는 작은 왕국에 일곱 백성이 살고 있었다 유난히 비밀이 많던 거짓말여왕, 일곱 백성을 너무 사랑하지만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모두 사형할 것을 명령했고...... 이것은 두더지 서기관이 비밀리에 옮겨적은 일곱 백성들의 유언장 귀머거리 시인 고독에 대한 풍문이 들려오면 마을 언덕에 모닥불을 피워주세요, 흉가에서 들썩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보고 싶어요. 어린이 일기를 쓰는 것은 숙제였으므로 일기장에는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었어, 엄마가 죽으면 염소에게 일기장을 먹여야지. (엄마에게는 비밀인데요 나는 시도 쓸 줄 알아요. 어제도 꿈속에서 엄마가 죽는 시를 썼다구요.) 소심한 혁명가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김재훈, "웅크린 사람" 웅크린 사람 김재훈 울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화분 하나 어둠 속에서 꺼낸 뒤 다른 어둠 쪽으로 옮겨 놓고는 암시도 없이 전략도 없이 울고 있다면 울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 2012년 1월
황인찬, "의자" 의자 황인찬 여섯 살 난 하은이의 인형을 빼앗아 놀았다 병원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형은 나의 의사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아프다고 말했다 어디가 아프냐 물어도 아프다고만 선생님은 내게 의자에 앉으라 하셨다 의자는 생각하는 의자였다 앉아서 생각해보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울어버렸다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져서 - 2011 겨울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문학동네, 2011) 기차역에 서서 허수경 어쩌면 당신은 그날 기찻길에 놓여 있던 시체였는지도 어쩌면 달빛이 내려앉는 가을 어느 밤에 속으로만 붉은 입술을 벌리던 무화과였는지도 어쩌면 당신은 막 태어난 저 강아지처럼 추웠는지도 어쩌면 아직 어미의 자궁 안에 들어 있던 새끼를 꺼내어서 탕을 끓이던 손길이었는지도 지극하게 달에게 한 사발 냉수를 바치던 성전환자였는지도 어쩌면 이렇게 빗길을 달리고 달려서 고대왕국의 무너진 성벽을 보러 가던 문화시민이었는지도 당신은 나는 먼 바다 해안에 있는 젓갈 시장에 삭은 새우젓을 사러 갔던 젊은 부부였는지도 그 해안, 회를 뜨고 있던 환갑 넘은 남자의 지문 없는 손가락이었는지도 어쩌면 당신은 그날 그 여인숙이었는지도 세상 끝에는 여인숙이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멀리멀리 끝까지 갔다가 결국 절벽에..
김수영의 시 ‘그것을 위하여는’ 발굴 한겨레 원문기사전송 2011-11-28 12:15 최종수정 2011-11-28 20:15 관심지수0글씨 확대글씨 축소 [한겨레] 문승묵씨, 53년 발표작 찾아 전쟁후 삶 그린 12연59행 장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김수영(작은 사진)(1922~1968)의 시 이 발굴되었다. 다음주 창간되는 계간 문예지 겨울호는 1953년 10월3일치에 실린 김수영의 장시 (큰 사진)을 발굴해 전문을 소개했다. 서지 연구가 문승묵씨가 찾아내 에 소개한 이 작품은 전체 12연 59행의 비교적 긴 분량으로 그동안 전집을 비롯한 그의 어느 시집에도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점은 김수영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부산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잡지사 근무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어름인 것으..
<현대문학> 2011년 10월호 * 기억해둘 만한 글들; - 최수철 소설 "변신-사랑의 알레고리 2" (아무래도 나는 알레고리를 사랑한다.) - 정명환 선생의 "인상과 편견" 10회 (내가 공감을 표하는 이분은 29년생.) - 해외문학 란에 이나경 번역으로 실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그림자Skyggen" (미친듯이 공감을 표하는 이분은 1805년생. 가끔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기 시작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던, 단 한 명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지 않은 과거라는 타국에서 쓰인 글들이 지금 살아 있는 어느 누구의 글보다 참말처럼 여겨지고 감동적이라는 사실이 아주아주 이상할 때가 있다. 거기는 외계나 다름 없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죄 기록들뿐인데. 저 이방의 말들이 어째서 여기, 나의 세계에서보다 ..
실비아 수수께끼 실비아 수수께끼 이진희 실비아 실비아이기도 하고 실비아가 아니기도 한 모든 실비아 혹은 어떤 특별한 실비아 이기적이고 싶은 실비아 착하구나 장하다 칭찬받고 싶은 실비아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는 실비아 그래서 자신을 어느 날은 소녀라고 어느 날은 소년이라고 틀림없이 믿는 실비아 어느 날은 아무 것도 아닌 먼지였다가 쓰레기였다가 어느 날은 전능하기 짝이 없는 실비아가 되고 싶은 실비아 죽도록 살고 싶은 실비아 그래서 사는 게 헌신짝 같은 실비아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하는 아름다운 실비아 새카맣게 응혈진 피의 매듭*을 끊어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고민을 커피처럼 즐기는 실비아 시를 쓰고 싶지만 훌륭한 시를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시를 쓰지 못하는 실비아 쓰고 싶은 시가 어떤 건지 모르는 실비아 다만 쪼글쪼글 늙어가..
슬픈 열대 슬픈열대(한길그레이트북스031) 카테고리 인문 > 인문교양문고 > 한길그레이트북스 지은이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한길사, 1998년) 상세보기 "알려지지 않았던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낸 서양문명 최대의 고명한 작품인 원자로의 경우처럼, 서구의 질서와 조화는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막대한 양의 해로운 부산물의 제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 (...) 인류는 이제 단일재배를 개시하려 하고 있다. 인류는 마치 사탕무를 재배해내듯 문명을 대량생산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인류의 식탁에는 오직 그 요리뿐이리라." (140)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 이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망각은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