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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context

김수영의 시 ‘그것을 위하여는’ 발굴

[한겨레] 문승묵씨, 53년 발표작 찾아

전쟁후 삶 그린 12연59행 장시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김수영(작은 사진)(1922~1968)의 시 <그것을 위하여는>이 발굴되었다.

다음주 창간되는 계간 문예지 <문학의 오늘> 겨울호는 <연합신문> 1953년 10월3일치에 실린 김수영의 장시 <그것을 위하여는>(큰 사진)을 발굴해 전문을 소개했다. 서지 연구가 문승묵씨가 찾아내 <문학의 오늘>에 소개한 이 작품은 전체 12연 59행의 비교적 긴 분량으로 그동안 전집을 비롯한 그의 어느 시집에도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점은 김수영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부산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잡지사 근무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어름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유명한 시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傷病)포로 동지들에게>를 쓴 것이 이보다 5개월 앞선 1953년 5월이었다.

“실낱같이 잘디잔 버드나무가/ 지붕 위 산 밑으로 보이는 객사에서/ 등잔을 등에 지고 누우니/ 무엇을 또 생각하여야 할 것이냐// 나이는 늙을수록 생각만이 쌓이는 듯/ 그렇지 않으면 며칠 만에 한가한 시간을/ 얻은 것이 고마워서 그러는지/ 나는 조울히 드러누워/ 하나 원시적인 일로 흘러가는 마음을 자찬하고 싶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 <그것을 위하여는>은 생각, 마음, 꿈 같은 시어들을 동원해 사유의 유장한 흐름을 보여줌과 함께 전쟁 직후 김수영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가야 할 곳도 가지 못하고/ 이제는 나의 천직도 잊어버리고/ 날만 새면/ 차디찬 곳을 찾아/ 차디찬 곳을 돌아다닌다”에서는 포로수용소로 대표되는 상실과 방황의 체험이 엿보인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 설움을 어떻게 발산할 것인가도 자연히 알아지는 것인가 보다”와 같은 대목에 나오는 ‘설움’은 김수영 초기 시의 선명한 키워드로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과 같은 이 무렵 시의 정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해제를 맡은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한양대)는 “(이 시에는) 실존적 기갈이라고 할 수 있는 원시적이고 우둔한, 그리고 설움을 발산해야 하는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이 반영되어 있다”며 “(기존의 평가에 더해) 이런 모습을 수렴할 때 다양하고도 폭넓은 김수영 시인의 시적 지향을 평가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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