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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tender

산토끼 집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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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etch from  http://runrabbitrun.ca/1/previous/9.html

 

 

흔히 동시에 성취하기 힘든 두 가지를 모두 해냈을 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말한다.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였던 시절에 학교 사육장 철조망 사이로 배춧잎을 준 것이 살아있는 토끼에 대한 경험의 전부인 나로서는 토끼를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평지의 사육장을 돌아다닐 때 긴 뒷다리가 퍽 거추장스러워 보였던 기억만으로는 실감하기 힘든 일이다. 아마 한 마리를 잡는 것만도 만만찮은 일인가보다. 일과 사랑, 돈과 재미, 진보와 보수 등 한 곳에만 기운을 다 쏟아도 제대로 얻어내기 어렵거나 하나를 성취하기 위한 조건이 다른 하나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일 때, 이런 난국을 기적적으로 타개해나가는 능력이란 얼마만한 뚝심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래서 자칫하면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고들 하는 걸까?

 

산토끼와 집토끼는 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유전자 수가 달라 교배할 수 없다고 하니 설령 잡더라도 함께 둘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유전자의 물리적 실체가 발견되지 않았던 백여 년쯤 전에는 이것을 체질이나 성향으로 설명했던 것 같다. 명문가 출신의 귀족이었으나 훗날 아나키스트가 된 러시아 지리학자 크로포트킨이 쓴 책에서는, 산토끼와 집토끼를 함께 두기 힘든 이유로 이들의 성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종류의 토끼들이 모두 공동체 생활을 즐기기는 하지만 산토끼의 공동생활이 놀이를 위한 것인데 반해 집토끼의 공동생활은 전적으로 고대 가부장적 가족의 이미지에 기초해 있어서 어린 토끼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것이다. 산토끼는 놀이를 어찌나 좋아했는지 접근해오는 여우를 놀이 상대로 여긴 녀석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개인주의적이고 열정적이며 놀기 좋아하는 산토끼는 침착하고 조용하며 순종적인 집토끼와는 성격 차이로 어울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훗날 밝혀진 유전학상의 이유도 어쩌면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방식의 설명일 것이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 이런!) 토끼는 유전자 수 정도는 달라야 저런 정도 성격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

 

-<매일경제> 매경춘추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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